당신이 한 벤처기업의 사장이라고 가정하자. 당신은 게임 프로그래머를 고용해 새 게임을 개발하는 사업을 하려 한다. 사업이 성공하면 10억 원의 수입을 얻는데, 사업의 성패는 프로그래머가 얼마나 프로그램을 잘 개발하는가에 달려 있다. 프로그래머가 열심히 일하면 성공 확률은 80%지만 대충 일하면 60%로 낮아진다. 이 프로그래머는 다른 직장에서 일하면 5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프로그래머에게 이 금액만 주면 그는 대충 일한다. 열심히 일하게 하려면 1억 원은 줘야 한다.
프로그래머에게 5000만 원만 지불하면 성공 확률이 60%이므로 당신이 얻는 이익은 10억 원×0.6-5000만 원=5억5000만 원이다. 1억 원을 지불하고 프로그래머가 열심히 일하면 성공 확률이 80%이므로 당신이 얻는 이익은 10억 원×0.8-1억 원=7억 원이다. 그러므로 1억 원을 주고 프로그래머가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편이 유리하다.
문제는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없어서 그가 열심히 일하는지 당신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피곤하기 때문에 대충 일하고, 실패하면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됐다고 변명할 수 있다. 실제로 프로그래머가 열심히 일해도 실패할 확률이 20%이기 때문이다. (후략)
■ 해설
윗글은 서강대가 2007학년도 수시 2-1 경제·경영학부 논술고사에서 ‘인센티브’를 주제로 제시한 글 중 하나다. 미국의 경제학자 딕시트와 네일버프의 ‘전략적 사고(Thinking Strategically)’에서 발췌해 재구성한 것으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도덕적 해이’는 자신이 직접 특정한 일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상황에서 종종 발생한다. 일을 부탁하는 사람을 본인(principal), 대신 일 처리를 해 주는 사람을 대리인(agent)이라 부르고 이러한 상황을 ‘본인-대리인의 관계’라 한다. 주주와 경영자 또는 국민과 관료 사이의 관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자기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대리인은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그 결과 본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이런 행동이 나타난 것을 가리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다고 한다.
‘도덕적 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한 대리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암묵적으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뜻에서 ‘도덕적’이란 표현을 쓰고 있을 뿐이다.
‘본인-대리인의 관계’에서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해답은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시함으로써 열심히 일하는 것이 대리인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실현된 이익에 관계없이 일정한 임금을 지급한다면 프로그래머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일 하등의 인센티브를 갖지 않을 것이다. 노력해도 비용만 더 들 뿐 임금은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래머의 노력을 반영하는 임금을 지급하거나 실현된 이익을 벤처기업 사장과 프로그래머가 공유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인센티브 설계’라고 한다.
한 경 동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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