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선약이 있습니다. 다음에 저희 회사로 오시죠.”(농심 관계자)
국내 대형 할인점의 ‘바잉 파워(Buying Power)’가 커지면서 대다수 제조업체는 할인점 눈치를 본다. 할인점이 납품을 받지 않으면 당장 매출에 큰 차질이 생기므로 ‘저자세’로 일관한다. 할인점이 고압적으로 납품 가격 인하나 경품 행사 참여를 요청하면 제조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응한다.
하지만 할인점의 고압적인 태도에 반기를 드는 제조업체도 있다. 대표적인 회사는 농심, 진로, 삼성전자나 LG전자, CJ제일제당 등이다. 이들 회사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나 다양한 유통 채널을 무기로 할인점과 대등한 관계를 맺어 다른 회사들의 부러움을 산다.
국내 1위 라면업체인 농심은 시장 점유율이 71%다. 특히 ‘신라면’은 연간 매출이 3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아 할인점에서 농심에 “물량을 제때 공급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이마트 관계자는 “다른 라면업체에는 덤 상품을 주는 ‘1+1’ 행사를 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농심에는 그런 부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도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 무기다. 생산 제품 중 국내 시장 점유율이 1위인 제품이 20여 개나 된다. 특히 ‘다시다’와 ‘햇반’은 국내 시장 점유율이 각각 82.9%와 65.8%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어 할인점과 가격 협상에서 제 목소리를 낸다.
지난해 9월 이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있는 이마트 점포에서는 진로 ‘참이슬 프레시’ 소주를 살 수 없다. 이마트와 진로가 납품 가격에 합의를 하지 못해 제품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두 회사 간의 가격 분쟁은 지난해 9월 참이슬 프레시 시판이 계기가 됐다. 이마트는 진로가 2005년 하이트에 인수된 뒤부터 가격 인하를 요구했지만 진로는 “납품가를 더 낮출 순 없다”고 버티고 있다.
진로가 이마트에 대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유통 채널 덕분. 진로는 전체 생산량 중 55%를 자체 유통망을 통해 식당이나 주점에 공급한다. 할인점을 통한 판매 비중이 45%이지만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에는 진로가 정한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어 이마트에 참이슬 프레시를 납품하지 않아도 매출 타격이 크지 않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수출 비중이 높아 할인점에 ‘아쉬운 소리’를 할 처지에서 해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체 매출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82%, LG전자가 74.3%다. 자체 유통망과 전자제품 판매장의 판매 비중도 높다.
백인수 롯데백화점 유통산업연구소장은 “제조업체가 할인점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나 브랜드 파워, 다양한 판매 채널 중 하나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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