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누상동에 사는 안수희(36) 씨는 최근 경남 통영시 죽림2차 대우건설 푸르지오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차로 5시간이나 달려 통영까지 찾아간 것은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파트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안 씨는 실생활에서 느끼는 아파트의 장단점을 파악해 대우건설 측에 제안하는 ‘푸르지오 리더스 클럽’ 회원이다.
대우건설은 1년에 한 번씩 이 같은 자문위원 10명을 뽑아 수시로 전국의 사업장에 파견한다. 이들은 또 매달 주제를 정한 뒤 주변 단지들을 연구해 발표하는 시간도 갖는다.
이번 달 주제는 ‘수납공간’으로 안 씨는 집 근처의 아파트 10여 곳을 방문해 단지별 수납공간의 장단점을 분석해 12일 본사에서 발표를 했다.
안 씨는 “최근 강남구 역삼동 푸르지오 아파트에 분리수거장 손 씻는 공간을 개선하자고 제안했는데 회사 측이 이를 즉각 반영해 고쳤다”고 말했다. 아파트 시장에서도 고객의 아이디어를 상품에 직접 반영하는 프로슈머(Producer+Consumer) 마케팅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 주부가 만드는 아파트
우림건설은 공사 중인 경기 광주시 오포읍의 ‘우림필유’ 아파트에 주부 자문단을 파견했다.
인근 성남시 분당구 주민 30명으로 구성된 주부 자문단은 아파트 건설 초기 단계부터 평면과 단지 설계에 대해 꼼꼼하게 조언했다. 특히 모델하우스를 열기 전에 미리 방문해 마감재 등을 사전 점검했다.
GS건설도 주부 모니터 요원인 ‘자이안 매니저’를 두고 있다.
공개 채용을 통해 10 대 1의 경쟁력을 뚫고 선발된 13명의 자이안 매니저들은 건설 현장을 찾아가 평면 설계 등을 점검하고, 모델하우스 품평회를 통해 사전에 불편한 점들을 찾아낸다.
김재득 자이서비스㈜ 서비스본부장은 “이들의 활동을 통해 화장실 소음, 주방 환기 시설, 벽지와 바닥재 문제 등이 크게 개선됐다”며 ”고객과 회사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고객의 불만 건수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 ‘고객의 아이디어를 삽니다’
고객의 아이디어를 사업에 직접 반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현대건설이 고객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광고가 대표적인 예.
이 회사는 ‘집에 담고 싶은 모든 가치’라는 주제로 작년 11월 고객을 대상으로 수기를 공모했다. 모두 8만여 건의 사연이 접수됐는데 이를 분석한 결과 ‘가족의 꿈과 희망’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현대건설은 이를 바탕으로 ‘가족과 사랑의 집짓기 참여하기’ ‘아이를 위한 서재 만들어 주기’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표현한 광고를 만들었다.
대림산업은 매년 초 ‘주부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뽑아 아파트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이미 1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신발 보관용 홈’은 올해 1월 경기 광명시 하안동의 아파트에 실제 적용됐다. ‘신발 보관용 홈’은 신발장 밑에 홈을 만들어 자주 신는 신발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다. 이 외에 거북선 모양의 테마형 놀이터 등도 주부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서 제안된 디자인이다.
SK건설도 매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SK 건축학생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기존의 설계 공모전이 대학생들의 창의성에 초점을 둔 데 반해, SK건설의 공모전은 실제 적용 가능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 마감재 선택도 고객이
한화건설은 고객을 대상으로 광고모델을 선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올해 4월 ‘꿈에그린 일반인 모델 선발 대회’를 열어 750 대 1의 경쟁률 속에 두 명의 모델을 뽑았다. 공동 1등상을 수상한 직장인 김정은(29) 씨와 대학원생 배성희(25) 씨는 한화건설 모델로 활동하게 됐다.
신완철 한화건설 상무는 “소비자와 상품의 일체감을 높여 주는 새로운 기업 마케팅 전략으로 일반인 모델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SK건설은 고객들의 목소리를 설계와 시공에 반영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패션센스’라는 행사다.
아파트는 분양 당시의 아파트 디자인이 입주 시점이 되면 이미 구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SK건설은 입주가 가까워 올 때 고객을 초청해 유행에 맞는 마감재 등을 선택할 수 있는 ‘패션센스’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 애프터서비스=브랜드 가치
세무 금융업무까지 서비스 확대▼
지어서 파는 게 전부가 아니라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진정한 의미의 주거공간을 조성하는 쪽으로 업무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건설업계는 주택을 완공한 뒤에도 각종 애프터서비스를 통해 업체의 신뢰도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하자 접수, 접수 사실 통지, 고객 불만 사항 검토, 작업 완료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일괄 처리할 수 있는 ‘아이클릭(I-click)’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자 민원을 접수하면 작업 일정과 결과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입주민에게 알려주며, 인터넷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림산업이 2003년에 도입한 ‘오렌지 서비스’는 고객의 요청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아파트를 관리해 주는 서비스다. 입주 후 3년 동안 연간 1회씩 △가스레인지와 후드 세척 △침대 메트리스 살균 소독 △전등 갓 청소 △단지 내 조경 관리 등을 실시한다. 또 입주 4년차부터는 매년 외부 유리창을 물로 닦아 주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은 2005년 애프터서비스 자체를 브랜드로 만든 ‘헤스티아’를 선보였다. 집 진드기 제거, 싱크대 상판 광택 서비스, 단지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해 주는 봄맞이 대청소까지 대행해 준다.
쌍용건설은 고객들이 제때 이사할 수 있도록 ‘입주 토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세무, 금융, 부동산 전문가와 상담원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입주를 앞둔 계약자들을 만나 각종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서비스다.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으면 부동산 전문가가 나서 매매를 알선해 주고,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 두려는 고객에게는 세입자를 알선해 준다.
세무사는 증여세나 양도세 등 세무 문제를 상담해 주고, 금융 전문가는 잔금 마련은 물론 여유자금 운용 대책까지도 세워 준다.
이 밖에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은 아파트 단지별로 하자를 미리 발견해 처리하는 ‘해모로 방문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SK건설은 조경을 정기적으로 관리해 주는 ‘우리동네 행복나무’ 행사 등을 열고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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