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재규어는 한 마디로 선(線)이다. 선이 아름다운 차다. 보닛 중앙의 엠블럼(사냥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재규어 모습)에서 시작해 보일락 말락 미끈하게 빠진 범퍼 아래 테일 파이프까지 이어진다. 유려함의 극치라 할 만치 예쁜 선이다.
‘라이언스 라인.’ 영국인들은 재규어의 선을 이렇게 부른다. 창업자 윌리엄 라이언스의 손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선이 브랜드가 된 상품은 코카콜라와 재규어가 대표적이리라. 그 라이언스 라인을 영국인들은 사랑한다. ‘잉글리시 엘리건스’(English Elegance·전통미 넘치는 영국풍 우아함)라는 재규어의 또 다른 이름 역시 그 선에서 왔다. 재규어에 ‘왕실품질인증서’가 발부된 것은 당연하다.
강진도 선의 고장이다. 우아한 선을 지닌 고려청자의 고향이다.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500년 고려시대를 풍미한 청자의 역사에서 강진은 가장 중요한 산지였다.
○클린엔진 장착… 콘크리트 포장길서도 조용한 질주
청자문화제(8∼16일)가 한창이던 지난주 재규어 XJ 2.7디젤을 몰고 강진을 다녀왔다. XJ모델은 재규어의 플래그십 모델이다. 그런데 지난해 디젤엔진을 얹은 XJ가 등장했다. 귀족의 풍모, ‘올드 레이디’의 정숙함을 상징하던 재규어가 소음과 진동, 오염의 화신으로 각인된 디젤엔진을 얹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상심은 기우. 예상을 뛰어넘는 조용함 덕분이었다. 유럽연합의 기준보다도 한참 낮춘 소음과 진동, L당 11.6km의 공식 연료소비효율(1등급), 유로4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한 클린엔진 때문이었다. 환경의 시대에 자동차를 모는 것은 갈수록 부담스럽다. 단 1g이라도 오염 배출을 줄일 수 있다니 반갑지 않은가.
서해안고속도로만큼 피곤한 길도 없다. 콘크리트 포장길의 소음과 진동 때문이다. 그 길에서도 재규어는 조용했다. 마치 호수 수면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카약처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핸들로 전해지는 진동까지 차단한 결과다.
오전 9시 강진. 목포시에서 내내 타고 오던 국도 2호선을 버리고 13호선으로 갈아탔다. 방향은 영암군 쪽. 거기서 월출산 무위사로 접어들었다. 사하촌(절 아랫마을)도 없이 달랑 찻집 하나뿐인 고즈넉한 분위기. 경내는 더더욱 수더분하다. 극락보전은 단청도 올리지 않았지만 16세기 조선의 기품이 그대로 간직됐다.
무위사를 1km쯤 앞둔 월출산 산자락. 길가는 온통 초록의 바다다. 그 위로 부슬부슬 비가 나리고 구름은 월출산 바위 봉을 온통 휘감고 있다. 덕분에 초록 찻잎은 더욱 짙고 빗방울은 더더욱 청초했다. 좋은 차는 아침 안개의 습기를 먹고 자란 차나무에서 오는 법. 그 차밭 사이 오솔길로 재규어를 밀어 넣었다.
강진은 일찍이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남도 답사 1번지’로 꼽은 곳이다. 그런데 문화 답사란 ‘모르면 꽝’이 되는, 지식이 좀 있어야 하는 것이라 평범한 사람들의 여행길로는 좀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진 땅을 찾는 이가 줄지 않는 이유는 ‘남도 밥상 1번지’라는 좀 더 감칠 맛 나는 여행거리 덕분 아닐까.
남도는 어디를 가도 음식상이 좋다. 그중에서도 강진 것을 한정식의 진수로 친다. 북으로 월출산, 남으로 강진만과 남해안을 두르니 그 갯벌과 바다, 산과 들에서 산해진미가 두루 남은 당연한 일이다.
○백년사 동백림 한정식… 청자 말고도 볼거리 먹을거리 풍부
강진읍내에서 해안을 따라 횟감 많이 나는 마량면으로 가는 남행길. 대구면이 청자의 고향이다. 지금도 200기나 되는 청자 가마터가 이곳에 집중돼 있다. 강진고려청자박물관도 여기에 있다. 언제고 들어가면 고려의 청자를 볼 수 있다. 발굴한 옛 가마도, 재현한 청자 가마도 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숲 속의 오솔길, 백련사 뒤편 만덕산의 울창한 동백림, 강진만 개펄을 따르는 멋진 해안도로, 그리고 곳곳에 자리 잡은 한정식당…. 강진에는 청자 말고도 얼마든지 즐길 거리가 많다.
전남 강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강진읍=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국도 2호선∼강진 ▽강진고려청자박물관=국도 2호선∼강진 목리나들목∼국도 23호선(마량 방향)∼대구면 ▽다산초당=국도 2호선∼남포 나들목∼다산초당 이정표 ▽월출산 무위사, 강진다원=국도 2호선∼성전면∼국도 13호선(성전 나주 방향)∼월출청소년야영장∼월출산 강진다원∼무위사
◇맛 집
▽한정식=명동식당(강진읍 서성리 11-3). 한 상(4인분) 단위로만 내는데 10만 원. 남도 한정식의 진수가 펼쳐진다. 깔끔한 실내도 내세울 만. 연중무휴. 061-434-2147
▽멧돼지 삼겹살 구이=강당가든(성전면 월남리). 방목장에서 직접 키운 멧돼지 삼겹살구이. 닭 뼈 국물로 쑨 메밀 찹쌀죽 포함, 1인분(200g) 9000원. www.kangdang.co.kr 011-609-1296
▽돼지불고기 백반상=수인관(병영면 남삼인리 313-1). 양념한 돼지불고기가 포함된 남도백반. 한 상(4인분) 단위로 내며 2만 원. 병영면 오일시장 안에 있다. 061-43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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