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유해물질 배출시설’ 인식 깼다

  • 입력 2007년 9월 28일 20시 16분


지난달 28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시의 삼성전자 반도체생산단지(SAS).

주변을 지나는 IH-35번 도로 변에는 광대한 옥수수밭 한가운데 들어선 공장 전경이 담겨 있는 대형 광고판이 우뚝 서 있다.

첨단 산업인 반도체 제조공장은 유출될 경우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수십 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하지만 1996년 이 단지에 1공장을 짓기 시작했을 때도, 올 6월 2공장이 완공되는 과정에서도 환경단체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올해 35억 달러(약 3조2550억 원)가 투입돼 건설된 2공장은 첨단 방식의 구리를 사용한 공정이 사용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유해물질 배출 논란 끝에 무산된 경기 이천시 하이닉스반도체 증설 공장에서 적용하려던 것이 바로 이 구리를 쓰는 공정이다.

하지만 환경기준에 엄격한 오스틴 시는 구리공정 도입을 선선히 인정했다. '폐수처리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던 SAS가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2공장 준공식 때에는 텍사스 주지사, 오스틴시장, 이 지역 상원, 하원 의원들이 총출동해 축하했고 현지 언론들도 "삼성이 황무지를 노다지로 바꿔놓았다"며 대서특필했다.

한국에서는 유해물질 배출시설로 지목됐던 반도체공장이 미국 땅에서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친환경 첨단생산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반도체공장=유해물질 배출시설' 인식 깬 SAS

오스틴은 미국 남서부 주민들의 젖줄인 콜로라도 강 연안에 위치해 있다. 또 사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비가 적은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오스틴의 오염물질 배출기준은 환경 선진국인 미국 안에서도 매우 엄격한 편이다.

SAS가 자체 정화과정을 거쳐 방류하는 폐수는 특별수질 보호구역으로 흘러들고 농부들이 이 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짓는다. 이런 이유로 오스틴 시는 SAS에서 나오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철저히 폐수를 감시한다.

SAS 측도 이런 엄격한 규제에 부응해 철저한 폐수 관리를 하고 있다.

우선 반도체 제조에 쓰인 물의 70%를 재활용하고 30%만 기준치 이하로 정화한 뒤 방류한다.

화학물질 저장탱크에는 유출사고에 대비해 이중 안전장치가 돼 있다. 또한 공장부지 안에 떨어진 빗물도 정화과정을 거쳐 하수도로 흘러들도록 설계돼 있다.

1998년 1공장 가동 이후 10년간 SAS의 폐수처리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온 오스틴시는 올해 SAS에 '전(前)처리 우수상(Excellence In Pretreatment)'을 줬다. SAS는 2000년부터 8년 연속 이 상을 받고 있다.

SAS의 론 브룩스 환경담당 수석부장은 "텍사스 오스틴시의 환경규제가 상당히 엄격하지만 환경기준을 맞추는 문제로 고민한 적은 없다"면서 "환경 기준이 때때로 바뀌지만 시 정부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열려 있어 갈등으로 확대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물고기 연못이 왜 필요해?

"이곳이 폐수가 공장 밖으로 배출되는 지점입니다."

브룩스 수석부장이 안내한 SAS의 폐수 방류 지점은 의외로 소박했다. 맑은 물들이 하수도관을 따라 졸졸 흘러갈 뿐이었다.

그는 "미국 연방 및 지방정부의 환경규제는 반도체 세척공정에서 사용하는 불소를 기준치 이하(65mg/L)로 낮추고, pH(수소이온 농도를 나타내는 지수)를 6.0~11.5 사이로 맞추는 등의 전처리(前處理·화학적 물리적 작용을 가하여 예비적으로 하는 처리)만 해 방류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에 맞춘 폐수가 공장 밖으로 방류되면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치면서 정화돼 콜로라도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브룩스 수석부장은 "한국의 많은 공장들이 폐수가 잘 정화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폐수에 물고기를 넣어 키운다는 기자의 설명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폐수가 제대로 처리되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특별히 입증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제대로 처리된 폐수를 24시간 시정부가 감시하기 때문에 이 공장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SAS 취재에 동행한 미국 위스콘신대 박재광 교수(건축환경공학과)는 "한국에서는 개별 반도체공장이 하수종말처리장 역할까지 해야 하지만 미국 배출기준은 공장 바깥의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한 번 더 걸러지는 것을 계산해 적정 수준의 전처리만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기업들의 폐수 처리비용은 최고 10분의 1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규제당국은 합리적이고 유연한 배출기준을 제시하고, 기업은 이를 철저하게 준수해 기업과 지역사회가 같이 발전하는 SAS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삼성의 반도체 투자로 활력 찾은 오스틴 경제

삼성전자의 미주 시장 전략 생산거점인 SAS가 반도체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이 지역 젊은이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찾게 됐다.

허허벌판이던 버려진 땅에 SAS가 들어서면서 공장 앞으로 4차선 도로가 뚫리고, 고급 주택가들이 곳곳에 건설되고 있다.

집값도 많이 올랐다. 10여 년 전 오스틴 시가 SAS를 이 곳으로 끌어오면서 기대했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SAS에서 기획업무를 맡고 있는 최기영 부장은 "텍사스주립대 학생들은 물론 멀리 동부의 아이비리그와 서부의 명문대 출신 학생들이 일할 기회를 찾아 이 지역으로 모여들고 있다"며 "한국 직원들이 맡았던 관리직 중 상당수가 현지 채용 직원들로 교체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스틴 지역에서 거주하는 한 교민은 "삼성 반도체공장이 들어온 이후 한국인과 한국 제품에 대한 이 지역 미국인들의 인식이 확 달라졌다"고 전했다.

●반도체공장에 우호적인 현지 언론

친환경 반도체 공장으로 명성이 높아지면서 현지 언론들도 SAS에 우호적인 보도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텍사스 지역의 TV방송인 KVUE는 최근 "삼성의 오스틴공장은 텍사스의 한 황폐한 땅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면서 "그동안 이 지역은 낙후된 곳이었지만 삼성의 공장 설립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 신문인 '오스틴 아메리칸 스테이츠맨'도 "삼성이 2공장에 투자한 35억 달러는 텍사스 지역에 투자한 업체 중에서 단연 최고"라면서 "SAS는 북미에서 최대 규모의 반도체공장 중 하나가 됐다"고 치켜세웠다.

또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텍사스는 삼성의 투자 대가로 낮은 세율과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공언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오스틴=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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