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의원입법, 함께 느는 시장규제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14분


임시국회가 열렸던 6월 국내 할인점업계의 시선은 국회로 쏠렸다.

할인점의 신규 출점(出店)이나 판매 품목 등을 규제하는 법안 10여 건이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심의됐기 때문.

이 법안들은 국회의원들이 17대 총선 공약이라며 의원입법 형태로 내놓은 것. 일부 법안에는 백화점처럼 ‘오후 8∼9시에 폐점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할인점업계는 물론 주무 부처인 산업자원부도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되는 항목이 많아 통상 마찰의 소지가 있는 데다 시장 논리에도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 법안들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돼 있지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재래시장과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법안 통과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지는 법률 가운데 일부가 불필요한 규제나 시장경제 논리에 역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또 정부가 만드는 규제의 ‘우회 입법’ 통로로 이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시장과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17대 국회 발의 16대보다 3배

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7대 국회 들어 의원 발의 법률안은 9월 말 현재 5763건으로 16대 국회(1912건)의 3배로 급증하면서 국회에 제출된 전체 법률안(6734건)의 86%를 차지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 가운데 의원입법이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이른다.

의원입법이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의정활동이 활발하다는 증거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의 품질과 효율성, 합리성 등에 대한 심사를 받지만 의원입법은 이런 절차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의원입법으로 생기는 규제 가운데 국민경제에 꼭 필요한 규제도 있으나 불필요한 규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여과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도 규제 총량만 관리할 뿐 의원입법으로 생기는 규제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올해 4월부터 시행된 산업기술유출방지법도 기업이 부담으로 느끼는 규제. 지난해 9월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것으로 정부가 지정한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해외 매각이나 합작투자, 기술이전 때 정부 승인을 받거나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합작투자나 기술이전을 할 때 매번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지적했다.

○ 정부, 의원입법 악용

정부가 새로운 규제 법안을 추진하면서 이해관계가 엇갈리거나 민감한 내용의 규제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의원입법을 추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규개위 심사 외에도 부처 협의와 법제처 심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의원입법 형식을 빌리면 10명 이상의 의원 서명만 받으면 되기 때문.

올해 4월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하고 분양원가를 공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사실상 정부가 주도했으나 기업의 가격결정권을 제약하고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의원입법으로 상정됐다.

노동부도 정부 법안으로 준비한 특수고용직보호법을 노사가 대립되는 데다 다른 부처에서 반대 의견을 보이자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한 민간 규제 전문가는 “이런 ‘정부 발의 의원입법’은 부처 간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부실화될 공산이 크고 부처 간 갈등을 초래하는 데다 정부 정책 신뢰도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 심의기구 만들어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의원입법으로 신설되는 규제에 대해서도 영향 분석이 이뤄질 수 있는 규제 심사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법제처도 7월 말 국무회의에서 ‘정부입법정책협의회’의 기능을 활성화해 국회 심의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및 평가를 강화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입법정책협의회는 의원입법에 대해 정부 부처가 이견을 보일 때 정부 당국자들이 모여 협의하는 기구이지만 그동안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 활성화되지 못했다.

또 법제처는 국회와 정부 사이에 의원입법 심의를 위한 협력기구를 별도로 설치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제연구원 규제개혁센터의 이주선 소장은 “정부입법처럼 의원입법도 검토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독립기구에 준하는 독자적인 심의기구를 국회에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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