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위원회가 18일 ‘가격 규제’를 강화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은 “반(反)시장적 규제”라는 비판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개악(改惡)’이라는 비판까지 들으면서 가격 규제 내용이 담긴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고 했던 공정위의 시도는 더는 정당성을 찾기 어려워졌으며 경쟁당국으로서의 위신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본보 첫 보도후 “개혁아닌 개악” 비판 일자 수용
“경쟁촉진 역할 충실해야” 공정위 입지에도 영향
○ ‘철회 권고’를 내리기까지
규개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이 담긴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가운데 규제에 해당되는 5가지 조항을 심사해 4개를 통과시키고 가격 규제에 대해서는 ‘철회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날 심사에서 위원 9명 가운데 대부분은 공정위의 방침에 부정적 견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심사에 참여한 한 위원은 “가격은 시장경제의 핵심”이라며 “가격에 문제가 있다면 경쟁을 촉진해서 해결할 문제인데도 공정위가 진입장벽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가격만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가격 규제를 둘러싼 공정위와 재계 사이의 논란은 재계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당초 공정위는 8월 13일 가격 및 이익률로 기업을 규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며 규개위 및 법제처 심사를 거쳐 11월 4일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지난달 초 공정위가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내용을 단독 취재해 보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보 9월 6일자 A2면(일부 지역 A1·3면) 참조
기업들 “정부가 신기술 개발 막나”
경제계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된 ‘가격 및 이익률 규제’가 기업의 기술 혁신과 원가 절감 노력까지 막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비판을 내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1970년대식 물가 관리 정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재정경제부도 “가격남용 규제를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등 정부 안에서도 공정위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공정위는 갈수록 비판이 거세지자 이달 3일 원안(原案)에서 ‘가격 규제’는 남기고 ‘이익률 규제’를 뺀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재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못했고 결국 규개위도 공정위가 추진한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 무엇이 문제였나
제품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도 이를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안에 종전의 ‘가격의 부당한 변경’ 외에 ‘부당한 결정’까지 포함시키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공급비용이나 동종업종, 유사업종에 비해 ‘현저히’ 높을 때 규제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세계적인 경쟁법 운용 추세와 한국의 규제 완화 추세를 모두 거스르는 것이며 기업의 창의적 활동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며 공정위를 비판했다.
또 ‘현저히’라는 표현이 모호해 공정위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규개위의 이번 결정은 가뜩이나 많은 비판을 받아 온 공정위의 향후 위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경쟁을 촉진해야 할 임무를 가진 공정위가 새로운 규제를 통해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기 때문.
전경련 황인학 경제본부장은 “공정위는 공정 경쟁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다소 지나쳤던 것 같다”며 “규개위가 내린 결정은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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