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꿀맛’ PL, 제조업체 ‘죽을맛’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0분


■ 이마트 자체브랜드 확대 파장

《19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이마트 용산점 식품매장. 코카콜라 가격의 절반에 불과한 이마트표 콜라를 진열대에서 집어 드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PL·Private Label) 라면인 ‘맛으로 승부하는 라면’은 라면 시장 불굴의 1위인 농심 신라면과 나란히 놓여 있다.

이마트가 최근 제조업체 브랜드보다 가격이 20∼40% 싼 PL 제품으로 ‘가격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한 직후 내놓은 6종의 PL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마트가 제품 출시 첫날인 18일 하루 동안 86개 직영점에서 팔린 PL 제품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즉석밥의 경우 PL 제품 ‘왕후의 밥’(4개입·2780원)이 2158개 판매된 반면 시장점유율 1위인 CJ ‘햇반’(3개입·3650원)은 1081개가 팔렸다.

이날 이마트 ‘태양초고추장’(3kg·9900원)은 1285개가 팔렸지만 대상의 ‘청정원 순창찰고추장’(3kg·1만6400원)은 고작 9개 팔리는 데 그쳤다.》

소비자 “전반적인 물가 하락… 실질소득 증가 효과”

제조업체 “자사브랜드 고사 위기… 품질 하락 우려”

○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2차 힘겨루기

대형 할인점이 구매력을 이용해 제조업체에 가격인하를 요구한 것은 최근 몇 년 새 일이 아니다. ‘최저가격 보상제’로 불거졌던 할인점과 제조업체 간 가격전쟁은 할인점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진로(참이슬)와 농심(신라면)처럼 부동의 1위 자리를 확보한 제조업체만 제외하고 나머지 제조업체들은 할인점이 요구하는 끊임없는 가격인하를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할인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할인점들이 영업마진을 높일 수 있는 PL 제품을 확대하면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힘겨루기가 다시 시작됐다.

이마트는 총매출의 9.7%(9200억 원)를 차지했던 PL 제품 매출 비중을 2010년에는 23%, 2017년에는 3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할인점 업계 2위인 홈플러스는 지난해 매출에서 PL 제품 비중이 18%(7800억 원, 의류 제외)를 기록했고, 롯데마트는 12%(4500억 원)를 차지했다.

제조업체들은 할인점의 이런 전략에 대응책을 강구하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한 생활용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PL 제품 공급을 거부하면 매출이 줄어들고 반대로 하면 제조업체 브랜드가 고사(枯死)할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들은 품질로 승부하는 1, 2등 브랜드만 살아남고 나머지 제조업체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출업체처럼 할인점에 PL 제품만 공급하는 업체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음료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덤이나 균일가 행사로 음료를 팔아도 남는 것이 없는데, PL 제품과 가격경쟁까지 하라니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연구원은 “글로벌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PL 제품 비중이 40%, 테스코는 50%에 이른다”며 “세계 유통시장에서 할인점의 PL 제품 확대는 추세인 만큼 국내 제조업체는 다양한 유통채널을 구축하거나 소비자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 가치 있는 제품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 소비 트렌드도 바뀌나

PL 제품의 확대는 제조업체들이 PL 브랜드와 맞서 원가를 절감하게 돼 전반적인 생활 물가도 내려가 소비자의 실질소득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PL 제품이 지나치게 싼 가격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제품 질의 전반적인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홈플러스의 완구제품이 안전상의 문제로 리콜된 것과 이마트의 가루녹차에서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돼 파장이 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마트 용산점에서 만난 주부 김종선(48) 씨는 “주로 화장지나 세탁세제 같은 소모품은 PL 제품을 사지만 의류나 식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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