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러시’ 이후…“中서 인건비 빼먹던 시대 갔다”

  • 입력 2007년 10월 30일 03시 02분


《1990년대 초반부터 인건비 상승으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4만여 개의 한국 중소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비용이 치솟는 등 경영환경이 악화된 데다 중국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진출 기업 중 80%가량을 차지하는 봉제, 완구, 액세서리, 단순 전자부품 등 이른바 ‘인건비 따먹기 식’의 단순 임가공업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부 한국기업 사장은 적자가 계속되자 인건비나 미수금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중국 정부가 한국에 강력히 항의하는 등 외교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반면 아직 많진 않지만 중국 기업이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력이나 브랜드를 구축해서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하는 기업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평복 KOTRA 다롄(大連) 무역관장은 “확실한 브랜드나 기술력, 판로를 확보하지 않고 중국에 진출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면서 “이제는 중국 진출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차이나 러시’에서 ‘차이나 엑소더스’로

동아일보 취재팀의 현지 취재 결과 중국 진출 1세대 한국 기업이 밀집해 있는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 청양(城陽) 구에서는 지난해 공장 문을 닫고 야반도주한 기업이 44개나 됐다.

이 가운데 중국기업은 3곳, 대만은 2곳이었으며 나머지 39곳이 한국 기업이었다. KOTRA 칭다오 무역관 황재원 부관장은 “칭다오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금년 들어 사업을 접는 기업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포기하는 한국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기업이 이른바 ‘4대 악재’에 노출돼 사업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4대 악재란 새 노동계약법 시행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 중국 정부의 저가(低價) 가공무역 제한, 외국기업 세제(稅制) 혜택 축소, 환경 규제 강화를 말한다.

특히 인건비는 올해 6월 중국 정부가 확정한 새로운 노동계약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상승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 변화로 국내 기업의 중국 투자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액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에는 41.3%에 이르렀지만 지난해에는 31.0%로 급감했다. 투자 건수 기준으로도 같은 기간 59.7%에서 44.3%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38.0%로 더 떨어졌다.

○새로운 중국 성공모델의 등장

반면 중국 기업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확실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중국시장을 이해한 뒤 공략을 시작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한국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밀폐 용기로 유명한 락앤락은 비슷한 종류의 중국 제품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지만 매년 100%씩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경쟁사의 추격에 대비해 2004년 중국 진출 이후 지속적으로 고가 브랜드 전략을 펼친 결과다. 지금은 ‘락앤락은 명품’이라는 이미지가 상하이(上海) 주변에서는 확고하다.

전자레인지용 콘덴서 제조업체인 한성엘콤텍은 철저한 사전 조사로 중국시장에 연착륙했다.

1992년 현지 사무소를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톈진(天津)에 진출한 한성엘콤텍은 4년여에 걸친 현지 조사 끝에 1996년 3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생산 초기부터 한국 본사에서 원부자재를 들여오지 않고 현지에서 조달해 원가를 40% 절감했다. 덕분에 삼성전기나 GE 등 글로벌 업체를 누르고 전자레인지용 콘덴서의 국제시장 점유율이 52%로 세계 1위 업체가 됐다.

이마트 상하이 지점 정민호 법인장은 “중소기업도 제품력과 브랜드를 구축하면 중국 명품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칭다오·쑤저우·자싱=이병기 기자 eye@donga.com

다롄·톈진·타이창=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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