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올해 상반기(1∼6월) 각 계열사로부터 30여 건의 브랜드 사용 신청을 심의했다. 이 중 브랜드관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브랜드는 전체의 60∼70%에 그쳤다. SK 브랜드를 앞세워 신규 사업을 준비한 일부 계열사에서는 “심의가 지나치게 엄격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 브랜드관리실 노찬규 부장은 “브랜드 사용을 불허(不許)한 일부 제품과 관계사는 SK가 지향하는 핵심 역량인 ‘에너지와 정보통신의 글로벌 기업’과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그룹이 회사의 얼굴인 ‘브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나섰다. 잘못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회사의 핵심 역량에 맞도록 브랜드를 정비해 새 얼굴로 거듭나는 ‘페이스오프(face-off)’에 나선 것이다.
○ “브랜드 쓰려면 허가 받아라”
GS그룹은 올해 8월 그룹과 무관한 ‘GS생활건강’에 GS 상호를 쓰지 말도록 법원에 낸 소송에서 이겼다. LG전자도 코스닥 상장업체로 정보기술 업체인 LGS와 상표권 침해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와 무관한 상표 도용만 단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룹 계열사나 자회사의 브랜드 사용도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브랜드 관리 전담조직도 신설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11개 자회사와 각 손자회사가 쓰고 있는 브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심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핵심 역량과 맞지 않을 경우 브랜드 사용을 중단시키는 ‘고강도 대책’까지 검토하고 있다.
GS홈쇼핑의 자회사인 강남케이블TV와 한국케이블TV울산방송은 올해 4월 그룹 내 ‘브랜드관리위원회’의 사용 허가를 얻어 회사 이름을 각각 GS강남방송과 GS울산방송으로 바꿨다.
LG그룹의 지주회사인 ㈜LG는 2005년 브랜드관리팀을 신설했다. 계열사들이 LG의 핵심 역량에 맞게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게 이 팀의 역할이다. ‘LG 브랜드 도용 제보센터’ 등 ‘브랜드 사용감시 시스템’도 구축됐다.
한화그룹도 내년 초 ‘브랜드관리협의회’를 만들고 각 계열사의 신규 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에서 브랜드가 적절하게 사용됐는지, 계열사별로 브랜드 가치 제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 기업 핵심역량에 맞게 체계적 정비
많은 국내 기업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무형 자산인 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브랜드 경영’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국내에서 마구잡이로 써 왔던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최근 인수합병(M&A)을 통해 신규 사업에 진출하거나 주력 사업을 전환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브랜드 관리 작업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CJ㈜ 측은 “‘종합생활문화기업’을 지향하는 그룹의 전략과 달리 아직도 식품회사로만 아는 소비자도 있다”며 “연말까지 글로벌과 혁신에 어울리는 슬로건, 브랜드지수 등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역시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의 64%를 금융이 차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화학, 화약회사’로 인식하고 있다. 금융 전문 그룹의 이미지에 맞는 ‘30대, 전문직’으로 각인시키는 게 한화의 브랜드 전략이다.
국내 주요 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자회사의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주회사의 주요 역할이 자회사에 브랜드 사용권을 주고, 수수료를 받는 대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 “너무 엄격하다” 계열사 반발하기도
엄격한 브랜드 관리에 따른 각 계열사의 내부 반발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 같은 갈등을 줄이기 위해 CJ, 한화 등은 각 계열사의 브랜드 관리 역량과 성과를 평가하는 브랜드성과관리지표를 개발할 계획이다.
A그룹의 한 관계자는 “인지도가 낮거나 핵심 역량에서 벗어나 브랜드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하면 반발하기도 한다”며 “이제까지 그룹의 ‘이름값’에 기대 영업을 해 온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연구원은 “국내 그룹들이 계열사를 묶을 조화로운 전략을 찾아내고,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 연구원은 “각 계열사의 영업과 제품이 그룹의 핵심 역량과 브랜드 가치 제고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등을 평가하는 잣대가 정밀해야 한다”며 “부정확한 잣대는 브랜드로 누릴 수 있는 ‘후광효과’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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