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문(56) 밀레코리아 사장은 2005년 독일의 명품 가전 회사인 ‘밀레’의 한국 법인장으로 임명되면서 본사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다.
“내 임기가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알 수 없는데 10년 계획이라니요?”
안 사장이 이렇게 반문하자 본사의 최고 경영진은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면 2, 3년 갖고 되겠느냐. 적어도 10년은 돼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이 ‘10년 계획’ 이야기에는 △멀리 보고 크게 승부하는 밀레 특유의 장인정신과 사람에 대한 믿음 △‘외국 가전 회사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한국 시장의 어려움 등이 모두 함축돼 있다.
○ 작년 매출 증가율 전년 대비 32% 늘어
밀레코리아 설립 당시 독일의 한 경제지는 “‘삼성, LG의 나라’인 한국에서 독일의 밀레가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이달 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안 사장은 “일단 한국 시장에 연착륙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 가전 시장에서 수입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에 불과하고 그 규모는 약 1000억 원대. ‘20년 쓰는 세탁기’ ‘자동차처럼 튼튼한 청소기’로 유명한 밀레는 좁은 수입 가전 시장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매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32% 늘었고, 올해 증가율도 35∼40%로 예상된다.
2005년 45명이던 직원도 최근 65명으로 늘었다.
안 사장은 “밀레의 약진에는 고급 아파트나 빌라의 ‘빌트 인(built in)’ 제품 공급이 크게 늘어난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밀레 빌트 인=최고급 주택’이란 소비자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밀레 제품을 처음 본 사람은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백색 가전’이란 말 그대로 하얀색 계통의 단조로운 색상이나 디자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밀레의 디자인 철학은 ‘가전제품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이 최고’라는 것”이라며 “색상만 화려한 디자인은 출시 초기에는 눈길을 끌지만 1, 2년만 지나도 식상해진다”고 설명했다.
‘메이드 인 독일’만을 고집하며 수십 년 경력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만든 ‘고장 없는 밀레 제품’은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애프터서비스(AS) 요구에도 끄떡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밀레 본사에서는 한번 뽑은 사람은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런 가족 같은 분위기가 밀레의 저력이기도 하고요. 밀레코리아도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답지 않은 구수한 인상의 안 사장이 인터뷰를 마치며 밝힌 ‘소박한 포부’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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