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력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은 확실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30여 년간 ‘부녀복지’를 위해 헌신했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퇴임한 선배가 “예전 남녀평등이라고 쓰면 상급자들이 빨간 줄을 긋고 그 위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적어 반려했다”는 일화를 들려준 것이 엊그제인데 최근의 화두는 단연 여성의 성공, 여성 리더십 역량 개발에 모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시점에서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란 경고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LG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는 여성의 성공을 위해 ‘책임감을 갖추라! 남성들에게 적극 다가가라!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라는 조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직장 내 여성 비율이 2000년의 19%에서 지난해에는 24%로 증가했으나 과장급 이상 간부 비율은 6%에서 8%로 증가하는 데 그쳤음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실제 작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예측한 2012년까지의 분야별 여성 리더 비율을 보면 언론계 30% 수준,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 의원 25% 이상, 대학교수 및 법조계 20% 이상이다. 반면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5%대로 소폭 상승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여풍당당’ 및 ‘여고남저(女高男低·여학생 성적이 남학생을 능가하는 현상)’가 대중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 이들 현실 진단과 미래 예측이 나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유독 기업이 여성의 승진과 성공에 상대적으로 두꺼운 장벽을 형성하고 있음은 예사롭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가(공직)가 시장(기업)보다 여성에게 우호적”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실질적 부와 희소가치가 큰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영역일수록 여성을 봐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여성 시각에선 기업의 조직문화가 충분히 여성 친화적이지 않음에 불만을 토로한다. 술문화 회식문화는 여전히 여성에겐 난공불락이요, 남성 간 올드보이 네트워크의 끈끈함을 뚫기도 결코 쉽지 않다.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했듯 여성의 자연스러운 속성이 종종 평가절하되고 인사고과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데 분노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개인 차원의 노력과 조직 차원의 변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발버둥칠 수밖에. 우선은 여성 스스로 단단히 내공을 쌓을 필요가 있다. 특히 조직의 생존 과정에서 여성에게 부족한 자질을 착실히 연마해야 하리라. 속된 표현으로 “여자들은 딱세(주어진 일)는 잘하는데 찍세(찾아서 하는 일)는 못한다”거나 “남자들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반면 여자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동시에 우리 조직문화도 철저한 체질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 일과 가족의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 어찌 여성만의 몫이겠는가. 남성도 일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실패로 귀결되지 않도록 ‘일 중심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더불어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유능한 여성이 자기 발로 걸어 나가지 않도록, 유리벽이나 유리천장을 실감하지 않도록, 여성의 성공을 담보함으로써 경쟁력 강화를 달성한 다종다양의 선진국 기업을 본보기로 삼을 일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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