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초상인물 선정과정 석연찮다”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자문위원들 “형식적 절차만 거친듯” 의혹 제기

“김구-안창호 모두 훌륭하지만 위원들은 도산 더 꼽아

최종결정 나온뒤 의아… 위에서 미리 정해놓은 느낌”

고액권 초상인물 2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위촉한 화폐도안 자문위원회의 민간위원들은 10만 원권 초상인물로 확정 발표된 백범 김구보다 도산 안창호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따라 화폐도안 자문위원회의 의견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사실상 특정 인물을 미리 화폐 초상인물로 정해 놓고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 형식적인 절차만 거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가 6일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자문위 민간위원 8명 중 4명의 명단을 확보해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 과정에 대해 추가 취재한 결과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자문위원 A 씨는 “한은 발표를 보고 다소 의아했다”며 “10명의 자문위원 중 한은 측 2명을 제외한 민간위원 8명 가운데 2명 정도만 독립운동가 가운데 백범을 초상 인물로 하자고 했고 나머지는 도산에게 더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전체 자문위원이 2차 후보 10명 가운데 4명으로 압축하기 위한 투표를 해 보니 도산이 1위, 백범이 2위인 것으로 나왔다”며 “표수는 도산이 6표, 백범이 4표인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자문위원 B 씨도 “자문위에서는 초상인물로 도산에 대한 평가가 더 좋았다”며 “결과적으로 보니 한은도 결정권이 없었던 것 같고 ‘높은 사람’들이 이미 틀을 다 짜놓고 끌고 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저 ‘방탄조끼’에 불과했다”며 “위에서 다 정해 놓고 형식적인 절차만 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자문위는 한은 측 인사로 이승일 부총재와 발권국장이 참가하고 역사학자 3명을 비롯해 철학·사상사, 미술사, 과학사, 문학,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각각 1명씩이 위원으로 위촉됐다.

상당수 자문위원은 독립운동가로서 안창호와 김구의 공적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초상인물로는 안창호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도산은 백범과 같은 시대에 독립운동을 했고 임시정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근대교육에 앞장선 교육자로 화폐도안 인물로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회의에서는 뭔가 말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며 “그런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고 소개했다.

A 씨는 “자문위가 마지막 회의를 통해 김구, 안창호, 신사임당, 장영실 등 4명으로 최종 후보를 압축한 게 9월 초인데 발표는 두 달이 지나서야 났다”며 “한은과 재정경제부가 두 달 동안이나 이 문제를 붙잡고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또 다른 자문위원 C 씨는 “자문위원 활동과 관련해서는 한은에 물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또 D 씨는 “특정 인물을 밀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건 잘 모르겠다. 얘기하기 곤란하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나머지 민간 자문위원 4명의 명단은 확인되지 않았다.

올 5월에 구성된 자문위는 고액권 1차 후보 20명(비공개)을 선정한 데 이어 각종 여론조사와 회의 등을 통해 2차 후보 10명과 최종 후보 4명을 가려냈으며 한은은 이 가운데 김구와 신사임당을 각각 10만 원권과 5만 원권 초상인물로 확정했다.

한은은 “명단을 밝히면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방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위원들의 면면을 비공개로 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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