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LG칼텍스정유는 두 대주주 가문의 계열 분리로 GS그룹 계열로 편입되면서 2005년 3월 사명(社名)을 ‘GS칼텍스’로 바꿨다.
회사 이름에서 ‘정유’를 뺀 이유는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석유제품을 파는 정유사가 아니라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경영진은 같은 달 정유사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인 ‘2차 중질유분해시설(HOU)’ 기본 설계에 착수했다. 1996년 완공된 1차 HOU 이후 약 10년 만에 이뤄진, 총공사비가 1조500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였다.
올해 9월 2차 HOU가 완공되자 회사 측은 “이로써 내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약 4000억 원(6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2차 HOU의 가동은 도약을 위한 서막(序幕)에 불과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2010년까지 약 2조7000억 원을 투자해 3차 HOU를 완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도화설비’로도 불리는 HOU는 벙커C유 등 헐값의 중질유를 원료로 등유 경유와 같은 고가(高價)의 경질유를 만드는 ‘지상 유전’으로 불린다. 정유사로서는 고도화설비 비율이 높을수록 원가를 절감하고 값비싼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GS칼텍스의 고도화설비 비율은 현재 20.8%로 국내 1위의 에쓰오일(약 24.9%)을 바짝 뒤쫓고 있다. 3차 고도화설비가 완공되면 약 30%에 이르러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도화설비는 고수익의 윤활유 사업 기회도 제공했다.
김병렬 GS칼텍스 윤활유사업본부장은 “외부에서 사왔던 윤활유 원료(윤활기유)를 2차 HOU의 가동으로 충분히 생산하게 됐다”며 “윤활기유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20∼30%로, 내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000억 원, 15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GS칼텍스는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 ‘BTX(벤젠 톨루엔 자일렌)’에 주력해 이달 말까지 생산설비 규모를 국내 최대인 280만 t으로 늘린다. 이것도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0%를 넘는 ‘알짜’ 장사다.
이정헌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윤활유와 석유화학 부문이 커지면 유가 환율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출렁이는 수익구조도 한층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GS칼텍스는 SK에너지와 가장 큰 차이였던 ‘유전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SK에너지가 1983년부터 자원개발에 나서 현재 5억 배럴이 넘는 매장량을 확보한 데 비해 GS칼텍스는 2003년 처음 합작사인 셰브론에서 캄보디아 탐사광구의 지분(15%)을 사들였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셰브론이라는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어 유전 확보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면서도 “셰브론의 세계 진출 전략과 충돌될 수 있어 늦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유가 급등으로 자원 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직접 원유 확보에 뛰어들었다.
허 회장이 최근 “원유 확보를 위해 유전개발은 물론 유전을 보유한 기업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며 “2015년까지 약 3억8000만 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달 아제르바이잔의 ‘이남광구’에 투자하는 등 유전 탐사와 확보에 속도를 내며 투자처를 4곳으로 늘렸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가 투자한 유전개발 사업도 카자흐스탄 등 7곳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 석유제품 수요가 전년 대비 2.1% 감소하는 등 성장성이 떨어지면서 수출은 물론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2006년 중국 베이징(北京) 인근의 폴리프로필렌 업체 인수를 시작으로 중국에서만 3개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회사 측은 “올해 안에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주유소 2곳의 영업을 시작한다”며 “포화 상태인 내수시장에 머물지 않고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GS칼텍스의 고도화설비 증설과 유전개발 사업은 긍정적이지만, 신규 사업 진출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GS칼텍스의 사업 영역은 석유제품 석유화학 발전 도시가스 유전개발 주유소 신·재생에너지 e비즈니스 액화천연가스(LNG) 등 총 9개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 약 19조 원 중에서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이 각각 16조3800억 원(86%), 2조7400억 원(14%)으로 사실상 전부를 차지했다.
GS칼텍스 직원들은 이 부문을 ‘회사의 약점’으로 꼽는 편이다. 실제 임직원 31명에게 물어봤더니, 10명(32%)이 ‘정유 부문에 치중한 사업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정유 부문 의존도가 높은 것은 국내 석유시장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정유산업 ‘소비지(消費地) 정제주의 원칙’에 따라 정유사가 국내 수요만큼 원유를 수입해 석유제품을 만들면, 정부는 일정 수익을 보장해 줬기 때문에 신규 사업에 적극 나설 유인(誘因)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GS칼텍스는 장기적으로 원유 고갈, 유가 급등에 따른 소비 감소 등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수소연료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GS칼텍스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정유업계 2위에 머물러 온 GS칼텍스에 대해 정유업계 내부에서도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GS칼텍스는 설립 이후 줄곧 ‘안정적인 2위’에 만족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설비 증설과 유전개발, 현대오일뱅크 인수 노력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1위로의 도약’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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