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 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인 120억 유로(15조6000억 원)에 이른다. 프랑스 의회가 허용한 80억 유로의 적자 규모를 50%나 상회한다. 프랑스는 출산 수당에서부터 주택 수당, 무료 교육, 최저 임금, 의료보험, 노령 수당에 이르기까지 사회보장의 범위가 넓다. 넓은 만큼 방만하게 운영되기도 했다.
특히 연금 재정의 적자가 87억 유로(11조 3100억 원)로 가장 크다. 이 중 상당 부분은 공기업 연금에서 발생하고 있다. 공기업 연금 개혁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도 시도했지만 1995년 실패한 후 12년 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공기업 연금 개혁에 최우선적으로 나선 이유다.
자크 비쇼 프랑스 리옹3(장 물랭)대 경제학 교수는 14일 시작된 프랑스 대중교통의 무기한 파업이 ‘공기업 연금 개혁을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이라며 “이는 앞으로 정부가 추진해야 할 본질적인 연금 개혁에 비하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현 공기업 연금 체제에서는 연금 납입자보다 수혜자가 2배 이상 많다. 일례로 광원의 경우 수혜자가 30만 명인데 납입자는 10만 명밖에 안 된다. 부족액은 다른 연금에서 빼오거나 정부가 세금으로 보조해야 한다. 훨씬 적은 액수의 연금을 받기 위해 최장 65세까지 일해야 하는 민간기업 근로자와 50세에 은퇴해 훨씬 많은 연금을 받게 되는 철도 기관사를 비교해 보라.”
―국민의 상당수는 파업이 계속돼도 정부가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간기업 근로자와 공기업 근로자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볼 수 있나.
“그렇다. 많은 민간기업 근로자들이 공기업 근로자나 공무원이 누리는 혜택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1995년 파업 때만 하더라도 민간기업 근로자들은 공기업 근로자와 공무원의 파업을 지지하는 편이었으나 오늘날은 반대로 돌아섰다.”
―프랑스에서 공기업 연금 개혁은 왜 독일에 비해 더 힘이 드나.
“프랑스 국영철도(SNCF)와 파리지하철공사(RATP) 근로자들이 훨씬 쉽게 국민의 통행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속한 회사가 파산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들이 속한 회사의 빚을 국가가 자동적으로 갚아 준다는 사실, 해고될 걱정 없이 교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독일인은 프랑스인에 비해 규율이 잡혀 있다. 그들은 개혁에 앞서 많은 토론을 한다. 그리고 개혁이 결정되면 받아들인다. 또 포인트를 적립하듯 연금을 쌓아 가는 독일 방식은 연금 납입 기간을 따지는 프랑스 방식보다 관리하기 훨씬 쉽다.”
―젊은이들이 직장을 갖기 시작하는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연금 납입 기간까지 늘어나면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되는가.
“사실 문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나이가 더 들어서까지 일해야 한다. 직장인이 은퇴하는 평균 연령이 프랑스는 58.5세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에서는 62세이고, 스웨덴에서는 64세다. 젊은이들이 입사한 후에 재교육만 충실히 받는다면 늙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당수는 70세까지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1982년 연금 개혁은 근로자가 늦어도 60세까지 은퇴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아닌가.
“개혁은 1998년 스웨덴처럼 한 번에, 근본적으로 해야 한다. 프랑스는 1993년 민간기업 연금을 개혁하고 2003년엔 공무원 연금을 개혁하고 이번에 공기업 연금을 개혁한다. 그때마다 근로자를 자극하면서 대통령들은 똑같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비유해서 말해 보자. 개꼬리를 잘라야 한다면 1cm씩 감질나게 잘라 개가 결국 자신을 물어뜯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단 한번에 싹둑 잘라 버리는 것이 좋은 것인가. 연금 납입 기간을 40년으로 늘리고 나면 다시 41년, 42년으로 늘려야 한다. 또 직장인 연금은 기초 연금과 분리해 분배형이 아닌 펀드식 연금제도로 이끌어 가야 한다. 프랑스는 언제까지 그렇게 감질난 개혁을 반복하면서 무수한 사회적 비용을 치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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