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시기 오해 안받게 입조심”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계 분위기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과거 대선 때마다 정치권의 음성적인 정치자금 요구를 피해 해외로 ‘도피성 외유’를 떠났던 주요 기업 총수들이 이번에는 대부분 국내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 등 주요 그룹은 18일 “회장이 대선 직전 해외에 나간다는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23일 프랑스 파리로 출국하지만 행사가 끝난 직후인 28일 곧바로 귀국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총수는 2002년 16대 대선 때만 해도 대부분 ‘외유 중’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2년 대선을 보름 남짓 남긴 12월 2일 일본으로 출국했고 정몽구 회장은 같은 해 10월 2010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을 위해 출국했다가 유치 실패 후에도 귀국하지 않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그해 12월 9일 중국 연구개발(R&D) 센터 개소식 참석 차 출국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1월 말 일본에서 열린 한일 재계회의 참석차 출국했다가 대선 때까지 귀국하지 않았다.
재계의 관계자는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최근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 등으로 정치권도 얼어붙으면서 이상한 ‘요구’가 사라진 것 같다”며 “국제 유가 상승과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 등 급박한 경영 환경도 총수들의 외유를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인은 내년에 새로 출범할 차기 정부가 ‘시장 및 기업 친화적 경제정책’을 택하길 기대하면서도 대선과 관련해 직접적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7월 ‘경제 대통령론’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최근 공·사석 구분 없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단체들도 정치적인 공방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최근 잇따르고 있는 대선 후보 초청 강연 때는 후보 간 참석 기업인의 ‘격’을 맞추는 데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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