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년초 경영공백 우려

  • 입력 2007년 11월 19일 03시 08분


《삼성그룹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내년 경영계획 수립 일정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연내로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던 사장단 인사도 물 건너간 분위기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18일“그룹 전략기획실이 김용철변호사 폭로 사태 이후 특별검사 법안 등 외부의 정치 공세에 대응하느라 해야 할 본연의 일을 못 하고 있다”며 “내년 초 일시적인 경영공백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계열사별로 내년 경영계획 초안을 작성해 전략기획실에 보고한다. 전략기획실은 각 계열사의 다음 해 투자액 규모와 채용 인원 등을 취합한 후, 그룹 차원에서 이를 조정해 최종 경영계획을 확정짓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올해는 김 변호사 폭로 사건으로 그룹 차원의 조정 작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고, 이로 인해 내년 경영계획이 해를 넘기고도 한동안 늦춰져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삼성 내부에서 나온다.

연내에 실시하기로 했던 인사도 마찬가지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사장단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최종 결심을 해야 하지만 지금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경영계획 수립에 이어 인사까지 늦춰지면 내년에 투자 타이밍을 놓치는 등 ‘스피드 경영’에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장 반도체 등 투자 타이밍이 성패를 가르는 사업에서부터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기업들은 대체로 연초에 연간 거래 계획을 많이 세우는데 삼성의 인사가 늦춰지면 해외 거래 기업들이 새 파트너가 확정될 때까지 다른 경쟁사로 주문을 돌릴 수 있다”며 “해외 기업들은 법적 다툼이 있는 기업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김 변호사 폭로 사태가 터진 지난달 말 직전까지만 해도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 및 인사와 관련해 긴장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었다.

미래 성장 동력을 찾으라는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계열사별, 그룹별 신수종(新樹種) 태스크포스가 꾸려졌고, 인사도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분위기가 불과 20일 남짓 만에 180도 달라졌다”며 “이러다 국내 대표 기업이 무력증에 빠지고, 국내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삼성은 19일 고 이병철 창업주의 20주기 추모 행사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해 경기 용인시 묘역에서 강영훈 전 국무총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 고인과 친분이 있던 일부 인사만 초대해 추모식을 조촐하게 치른다.

다음 달 5일로 예정된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 행사도 현재로서는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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