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분야 전문가 55명은 ‘차기 정부의 개혁 과제’로 교육 개혁, 정부 개혁, 대북정책 개선에 이어 기업규제 개혁을 꼽았다.
기업들이 피부에 와 닿도록 규제를 혁파해 기업의 투자 의욕을 되살리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동력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법치주의 확립, 개헌, 사회양극화 해소, 부동산 정책 개혁 등도 차기 정부의 주요 개혁 과제로 꼽았다.》
○ “규제 혁파해 친기업 환경 조성해야”
기업 규제의 문제점을 꼽은 교수들은 한목소리로 “노무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는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의 벽’ 때문에 신음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감하고 실질적인 규제 혁파를 통해 ‘친기업적 환경’을 만들어 기업의 투자 의욕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현재 대통령 직속기구로 돼 있는 규제개혁위원회 대신 영국처럼 ‘규제개혁부’를 신설하거나 힘 있는 상설행정위원회로 격상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규제 개혁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업무의 책임을 기업 출신 인사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규제 방식도 허용된 것 외에는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에서 금지된 것 외에는 포괄적으로 허용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 과도한 수도권 규제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두원(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개방경제 체제에서는 수도권을 규제한다고 해서 곧바로 지방 투자가 늘어날 수 없다”며 “경쟁력이 있는 수도권에 투자를 제한한다면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 완화에 앞서 기업 관련 정부부처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창원(행정학) 한성대 교수는 “현 정부 들어 공무원은 9만5000여 명이 늘고 정부의 행정규제 건수는 7724건(2002년 말)에서 8084건(2006년 말)으로 늘었다”며 “공무원 수의 증가→규제 확대→경제성장률 저하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태호(법학) 경희대 교수는 “기업 간 상생을 가능하게 하는 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돼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창희(정치학) 인하대 교수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더드와 다른 기업규제를 우선적으로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법치주의 확립 등도 주요 개혁 과제
교수들은 이외에도 차기 정부에서는 ‘법치주의와 국가 기강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전오(법학) 성균관대 교수는 “경제규모 면에서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지위에 있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편법과 불법이 결과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측면이 강하다”며 “이를 개혁하기 위해 리더집단의 도덕성 재무장과 엄격한 법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 개편 등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종복(법학) 서울대 교수는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차기 정부에서는 내각책임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대선후보 규제개혁 공약
이명박 출총제 폐지… 수도권규제 전면 재검토
이회창 국내기업 투자막는 역차별 해소 주력
정동영 금산분리-출총제-균형발전 원칙 유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출자총액제한제도,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 기업 관련 각종 규제에 대해 주요 대선 후보들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총론에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서로 다른 접근법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과감한 규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놓은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 이명박, 규제 과감하게 개혁
이 후보는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막고 있는 ‘금산분리’에 대해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우려가 있다”며 줄곧 “완화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우리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비춰 너무 경직된 금산분리 원칙을 갖고 있다”며 “산업자본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필요는 없고 감독을 철저히 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출총제를 폐지해 기업들의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 규제에 대해서는 “수도권 억제정책에 따라 미뤄져 왔던 수도권 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방안을 수립하는 등 수도권정책을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두원 (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이 후보의 규제완화 공약은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고 기업의 현금 유보액을 투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며 “그의 공약을 ‘신(新)재벌정책’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 이회창, 규제 개혁 필요성에 공감
이 전 총재는 22일 발표한 공약집에서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집권 1년 내에 모든 기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기조는 이 후보와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 전 총재는 국내 기업의 역차별적 요소를 없애는데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출총제에 대해 “우선은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폐지하겠다”는 태도다. 이 전 총재 측은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고도 출총제 때문에 신규 투자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금산분리에 대해 “기업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금산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나성린 (경영학) 한양대 교수는 “한국은 규제가 지나치게 많아 금융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이 전 총재의 공약대로 기업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금산분리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정동영, 대기업 집중 견제 필요
정 후보는 금산분리 폐지를 주장한 이 후보의 경제관을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라 비판하며 “금산분리는 공정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라고 말했다. 금산분리를 폐지하면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
정 후보는 출총제를 보완해 기업 투자의 숨통은 터주되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철저히 막겠다는 태도다.
그는 수도권 규제와 관련해 국토 균형발전의 원칙을 유지하며 규제의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선별적 규제 완화론’을 제시했다. 그는 특히 재계가 반대하는 집단소송제의 확대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정영근 (국제경제학) 선문대 교수는 “정 후보는 중소기업 중심의 ‘차별 없는 성장’을 기본 철학으로 정책 구상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 후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 후보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평가했다.
문국현 수도권규제 사안별 완화
이인제 금산분리-출총제 등 손질
권영길 대기업-수도권규제 고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금산분리와 출총제를 모두 유지하지만 수도권 규제는 사안별로 완화하겠다는 태도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금산분리와 출총제를 완화하고 수도권 규제도 파급효과가 큰 경우에 한해 부분적으로 풀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금산분리, 출총제, 수도권 규제를 모두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정기선 기자 ks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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