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심사소위에서 ‘삼성특검’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경영 환경이 어려운 때에 특검을 한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다. 내년 경영이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된다”는 내용의 짧은 공식 논평만 내놓았다. 특검에 대해 지나치게 왈가왈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장기 수사가 불가피한 데다 수사 범위와 대상도 지나치게 넓어 경영 활동 전반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룹의 한 임원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면 연내 또는 내년 1월까지는 수사가 끝날 수 있지만, 특검은 내년 1월에 수사를 시작해 상반기 내내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내년 한 해 경영은 물 건너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특검이 시작되면 그룹 핵심부와 계열사 경영진이 조사받기 위해 수시로 불려 다닐 것이 뻔한데 내년 경영 계획 수립은 물론이고, 해외투자 등 주요 경영 활동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누가 내리겠느냐”고 덧붙였다.
재계도 삼성 특검법 도입으로 한국 경제 전반의 대외신인도 하락이 예상되는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제5단체는 16일 부회장단 기자회견을 통해 특검 반대 의견을 밝힌 데 이어 이날 다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검찰이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마당에 수사 초기부터 특검을 도입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수직, 수평적으로 수많은 기업과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그룹의 경영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특검 도입은 고유가 등 좋지 않은 경제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련 중소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계에서는 검찰 수사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데 정치권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검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기업을 정치에 악용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치권이 일제히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지만 말로만 그러는 것 같다”며 “특검법이 발효되면 실익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의 반(反)삼성, 반기업 정서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특검과 검찰 양쪽으로부터 이중으로 조사받는 상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특검법이 발효되면 형식적으로는 검찰이 수사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특검에 넘기는 게 맞지만, 검찰도 조직의 수장(首長)이 관련돼 있는 등 자존심이 걸린 문제여서 쉽게 수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만약 삼성이 특검과 검찰에서 모두 조사를 받는다면 경영에 미치는 부작용은 훨씬 커질 것”이라며 “최소한 조사 주체라도 한쪽으로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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