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비자들 ‘착한 상품’ 산다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3분


《이달 초 서울 중구 명동의 노점에는 진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특이한 ‘짝퉁’ 가방이 등장했다.

‘I'm not a plastic bag(난 비닐봉투가 아니에요)’이라는 문구가 쓰인 이 ‘짝퉁’ 가방은 개당 2만∼3만 원에 팔렸다. 올해 4월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애냐 힌드마치 씨가 ‘비닐봉투 사용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뜻에서 한정 판매한 가방을 모방한 것이다. 진품의 가격은 15달러였다. 이 제품이 환경 보호에 동참하고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가방을 저렴하게 가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에서 수백 달러에 거래될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었다. 이 때문에 명동거리에 ‘짝퉁’까지 등장한 것이다.

환경 보호, 사회공헌 활동 등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평판이 소비를 자극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개인의 욕구 충족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자’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 “사회적 평판이 가격 프리미엄을 만든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올해 7월 ‘경쟁의 새 규칙 형성’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윤리적 소비자’의 성장을 전망했다. ‘윤리적 소비자’는 기업의 사회적 평판을 몇 번 이상 따져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로 정의됐다.

‘가격 대비 품질’을 따지는 합리적 소비의 패턴이 환경 보호와 사회 발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배려하는 ‘윤리적 소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이달 초 프리미엄 생활용품 브랜드 ‘빌려 쓰는 지구’를 내놨다. 친환경 원료로 상품을 만들고 재활용 용기와 재생지로 포장했다. 주방세제 용기에 지구온난화로 사라져 가는 열목어에 대한 정보를 안내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반 제품에 비해 2, 3배 비싸더라도 환경 보호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소비자가 등장할 것으로 보고 개발했다”고 말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얻는 가격 프리미엄이 5∼10%에 이를 것”이라며 “기업들도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경쟁의 새 규칙…‘윤리적 소비자’를 잡아라

기업들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환경보호 등에 쓰는 ‘공익 연계마케팅’을 펼치거나 환경보호 등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한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해 4월 재활용 의류와 가방 등을 판매하는 ‘에코 숍’을 열었다. 이 백화점 측은 “올해 3분기(7∼9월) 매출이 전 분기 대비 37% 늘었다”며 “매장의 수익금을 멸종 위기조류 보호기금 등으로 쓰겠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로라월드는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멸종위기 동물인 ‘부시베이비’를 모델로 만든 신제품 캐릭터 인형 ‘유후’를 선보일 계획이다. 오로라월드 측은 “환경 보호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새로운 가치”라며 “6개 대륙의 멸종 위기 동물을 소재로 캐릭터 인형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벅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아름다운 가게’ 등은 저(低)개발국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매한 원두커피와 의류 등의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 중이다.

○ ‘2만 달러 시대’ 상품 선택의 새로운 기준

국내에서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 본격적인 ‘윤리적 소비’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가격 파괴를 내세운 할인점이 등장했고 이후 사회 양극화 현상으로 ‘명품 선호 현상’ 등이 나타났는데, 앞으로는 윤리적 소비가 화두가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정무역 등의 대안무역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한 응답률은 3%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안무역에 대한 설명을 하고 “품질에 차이가 없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응답자의 69.6%가 구매 의사를 밝혔다.

신충섭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무역팀장은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지만 잠재적 소비자 층은 적지 않다”며 “품질과 가격을 유지하면서 상품을 다양화한다면 윤리적 소비가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대안무역:

공정무역(fair trade)이라고도 불린다. 저개발국가의 농부나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이들의 생산품을 정당한 가격에 구매하는 무역의 한 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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