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여러 나라에 분산
‘본거지’ 개념 희박해져
《“미국 기업으로선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3월 세계적인 에너지 및 군수(軍需) 기업인 미국의 핼리버튼이 본사를 미국 휴스턴에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옮기겠다고 발표하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이 이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핼리버튼은 딕 체니 미 부통령이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이 220억 달러(약 21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핼리버튼은 에너지 부문 매출에서 중동과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져 본사를 중동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서도 본사를 옮기거나 복수 본사 체제를 갖추는 탈국적화가 빨라지고 있다. 》
○본격화하는 탈(脫)국적화 현상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액센추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본사’라고 표시된 부분이 아예 없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전 세계에 진출하면서 ‘본사’라는 개념을 없앴다.
규모가 제일 큰 뉴욕 본부도 ‘뉴욕 사무소’라고만 표기돼 있을 뿐이다. 윌리엄 그린 CEO도 별도 회장실을 두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세계 경영을 한다. 그린 회장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CEO 인사말을 통해 “회사가 중국사업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은 중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본거지’ 개념이 바뀌고 있다”며 “여러 장소에 본사를 두는 ‘복수 본사’ 개념이 일반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한 레노버는 중국 기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요한 사업부서가 베이징은 물론 싱가포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롤리 등 9개 도시에 흩어져 있어 딱히 본사를 어디라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기업들 목소리 커져
다국적 기업들이 회사에서 국적 개념을 없애려는 것은 사업 추진이나 브랜드 전략상 세계화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은행인 유니크레디트는 2005년 독일계 금융회사를 인수하면서 아예 회사 공용 언어를 이탈리아어에서 영어로 바꿨다. 원래 밀라노에 있는 ‘1개 본사’ 개념을 유럽 주요 도시 23개의 지역 본부 사무실이 모두 ‘23개 작은 본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바꿨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기업인 메가소프트도 최근 본사를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미국 베드퍼드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주요 고객이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기업들이어서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는 것이 사업에 유리하기 때문.
중국 패션업체 ‘포트 1961’은 최근 본사를 중국에서 미국 뉴욕으로 옮기면서 글로벌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본사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기업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다국적 금융회사인 ING의 미셸 틸망 CEO는 최근 “네덜란드가 세금, 정부 서비스, 교육 등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암스테르담에 있는 본사를 해외로 옮길 수도 있다”고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했다.
이 같은 탈국적화는 기업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경영대학원인 프랑스의 인시아드는 싱가포르에도 캠퍼스를 내는 등 ‘전 세계를 위한 경영대학원’을 강조한다.
주요 기업들의 국적 탈피 경영 사례 | ||
기업 | 원래 국적 | 탈국적 및 본사 이전 사례 |
핼리버튼 | 미국 | 본사 두바이 이전 발표 |
액센추어 | 미국 | 본사 개념을 없애고, CEO는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경영 |
레노버 | 중국 | IBM PC사업부 인수 후 주요 사업 부서를 전 세계 9개 도시에 배치 |
유니크레디트 | 이탈리아 | 독일 금융회사 인수 후 복수 본사 개념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회사 공식 언어로 영어 채택 |
포트 1961 | 중국 | 본사를 뉴욕으로 옮기고 주요 간부들도 뉴욕 본사에서 근무 |
하니웰 스페셜티 머티리얼 | 미국 | 본사를 미국 모리슨에서 중국 상하이로 이전 발표 |
자료: 월스트리트저널, 야후 파이낸스 |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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