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좀도둑’만 잡는 저작권법 이대로…

  • 입력 2007년 12월 4일 03시 05분


“댁에서 고소당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모든 음악, 영화가 디지털 파일로 유통되는 디지털 콘텐츠 시대에는 ‘댁내 편안하신지요’ 대신 이런 인사말이 일상화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저작권법이 강화되면서 피해자인 저작권자의 신고 없이도 고발할 수 있는 비(非)친고죄의 범위가 넓어져 이와 관련한 고소 고발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검찰에 접수된 단속 건수만 2005년 연간 1만2700건에서 올해는 9월까지 1만4400건으로 증가했습니다.(이는 기소 전 합의된 대부분의 경우를 제외한 수치입니다)

최근에는 한 법무법인이 만화가협회의 이름을 빌려 대량의 고소장(또는 고소 안내장)을 보내 무단 복제 만화를 본 누리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얼마 전엔 인터넷 소설을 무료로 내려받아 고소를 당한 한 고등학생이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져 ‘저작권 자살’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고 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불법 복제된 콘텐츠를 공짜(또는 싼값)로 내려받아 보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죠.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불법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에 정부는 저작권법을 개정하면서 이들 사업자가 불법 콘텐츠 유통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을 경우에도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 모든 골목길에 1만 원짜리 지폐가 잔뜩 뿌려져 있다면 이를 줍는 사람을 유실물 횡령으로 잡아들일 것이 아니라, 지폐를 뿌린 사람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죠.

하지만 주관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최근 이들 사업자를 적발해 놓고도 업체들의 반발로 과태료를 부과하지 못했습니다.

멋모르는 학생들에게는 70만 원의 벌금으로 겁을 먹게 하면서도, 이를 통해 큰돈을 버는 업체들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셈입니다.

저작권 보호 조치 강화는 시대적 대세지만 그 실천이 ‘좀도둑’만 잡고 ‘큰 도둑’은 방치하는 것이라면 문제 아닐까요.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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