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배 품종 유출” vs “해외서 판로 개척”

  • 입력 2007년 12월 5일 03시 04분


국내 - 中진출 배 재배농가, 저가 역수입 싸고 갈등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아 나선 해외 생산기지다.”(중국 진출 농민)

“품종 유출로 국산 배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국내 배 재배 농가)

최근 한국과 기후와 토질이 비슷한 중국 산둥(山東) 성으로 진출한 배 재배 농민과 한국의 농가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중국 진출 농민들이 생산한 저가(低價) 배가 국내 배 재배 농가의 수출시장을 잠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산 배에 ‘한 방’ 맞은 국산 배

2003년 10월 중국 산둥 성에 진출한 국내 배 재배 농민 23명은 ‘산둥 배 영농조합’을 결성했다. 이 조합은 현지에 마련한 농지 1000만 m²(약 300만 평)에서 배 농사를 지어 올해 4만5000t가량의 배를 수확했다.

이 가운데 60%(2만7000t)는 중국 내수(內需)시장, 40%(1만8000t)는 동남아시아 등지로 각각 내보낼 예정이다. 이 조합의 올해 수출 예상 물량은 지난해 국내 전체 배 수출 물량(1만6295t)보다 많다.

중국 진출 농민들이 생산한 배는 국내 ‘신고배’와 같은 품종으로 당도가 높고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다. 가격도 국산 배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중국에 진출한 월마트나 이마트 매장은 물론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해외시장에 수출돼 호평을 받았던 국산 배는 큰 타격을 입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배 수출액은 3662만3000달러. 5606만1000달러였던 2005년에 비해 34.7% 줄었다.

○밀반출인가, 농업개방 시대의 선각자인가?

국내 배 재배 농가들은 배 수출의 감소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농민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저렴한 땅값과 인건비를 이용해 생산한 배를 외국에 팔면서 국산 배가 수출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 여기에다 수출길이 막힌 배가 국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국내 배 가격을 떨어뜨려 배 재배 농가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원영 천안 배 원예농협 청과수출 담당 지도사는 “배 수출의 감소는 국산 배 품종을 갖고 나간 농민들에게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 농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진출 농민은 “품종 유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건비와 땅값이 싼 중국에 미리 진출해 해외 생산기지를 마련한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농업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내 농민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 농업은 가격 경쟁력은 없지만 기술 경쟁력은 뛰어난 만큼 제조업처럼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고 수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다만 종자 유출 등 지식재산권 문제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하는 등 법적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야 장기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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