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물가 인상…日,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 입력 2007년 12월 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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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 선 ‘빈 택시’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에서 도쿄 도와 요코하마의 택시 요금이 이달 초 10년 만에 올랐다. 택시 회사나 운전사들은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병원을 오가는 노인층 수요자가 14%에 이른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줄지어 선 ‘빈 택시’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에서 도쿄 도와 요코하마의 택시 요금이 이달 초 10년 만에 올랐다. 택시 회사나 운전사들은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병원을 오가는 노인층 수요자가 14%에 이른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못지않게 디플레이션(물가 하락)도 무섭다.’

10년 가까이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으로 고민해 온 일본에서는 물가가 오르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일본 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중의 하나도 ‘디플레이션 탈출’이다.

마치 여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최근 일본의 일부 공산품과 서비스 요금이 뜀박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정작 소비자는 물론 정부와 기업도 이를 반기는 표정이 아니다. 어찌된 연유일까.

○ 17년 만의 가격 인상 도미노

올해 6월 일본 열도는 식품업체인 큐피가 마요네즈 가격을 6∼10% 올렸다는 뉴스로 떠들썩했다. 1990년대 초반 거품이 붕괴된 이후 공산품 가격은 떨어지기만 하는 것으로 알아 온 일본인들에게는 ‘17년 만의 마요네즈 가격 인상’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서곡(序曲)에 불과했다. 7월에는 또 다른 식품업체인 아지노모토, 11월에는 하우스식품이 각각 마요네즈와 바몬드 카레의 가격을 올렸다. 두 제품 모두 가격 인상은 1990년 이후 17년 만이다.

최근에는 아예 각 기업이 ‘몇 년 만의 가격 인상’인지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라도 하는 듯한 양상이다. 17년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일본의 최대 제빵업체인 야마자키제빵은 24년 만에 식빵 값을, 메이지유업은 26년 만에 ‘불가리아 요구르트’ 값을, 모리나가제과와 메이지제과는 각각 28년과 34년 만에 밀크초콜릿 값을 인상하기로 했다.

인상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은 식품 가격뿐이 아니다. 도쿄(東京) 도와 요코하마(橫濱) 지구의 택시 요금도 10년 만에 올랐다. 3일부터 기본요금(2km까지)은 660엔에서 710엔(약 5600원)으로, 주행요금은 274m당 80엔에서 288m당 90엔으로 인상됐다. 가솔린 값은 몇 달이 멀다 하고 오르는 추세다.



○ 울어야 하나?

생활과 직접 관련된 항목의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데 대해 소비자들은 ‘지갑 끈’을 조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국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올겨울 어디에 보너스를 쓸 것인지를 조사한 결과 저축하겠다는 응답이 전년보다 5%포인트나 증가한 41%에 이르렀다. 반면 ‘여행, 레저, 취미’와 ‘내구소비재 구입’이라는 응답은 모두 1%포인트씩 줄었다.

또 렌고종합생활개발연구소가 최근 근로자 776명을 조사한 결과 1년 전에 비해 물가가 올랐다고 느낀 응답자의 비율은 69%로 이 조사가 시작된 200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연구소 측은 물가 인상이 근로자의 스트레스 증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택시 요금 인상이 노약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택시 이용자의 14%는 병원을 오가기 위해 타는 노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택시 회사가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택시 운전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없는 손님이 요금 인상 때문에 더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휩싸여 있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은 원유와 원료 가격 인상 충격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 웃어야 하나?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온 이유는 물가 하락이 기업 실적 악화→실업 증가 및 임금 하락→소비 위축→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펴는 바람에 1991∼2004년 가계가 손해 본 금리 수입이 331조 엔에 이른다는 추산을 내놓기도 했다.

따라서 디플레에 찌든 일본에서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기업의 수입과 가계의 소득이 함께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일본 소비자들이 겪고 있는 가격 인상 도미노는 이처럼 ‘좋은’ 인상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수요가 늘어서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원유와 원료 값이 올라 가격이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 실적은 실적대로 악화되고 가계의 살림에도 주름살이 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본 총무성이 10월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의 구체적인 명세를 보면 유가 상승의 영향을 적게 받는 공산품의 가격은 대부분 하락세를 보여 전체 지수가 1년 전에 비해 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일본의 많은 경제전문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일본 소비자들이 체감물가는 오르는데 물가지표상으로는 크게 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이중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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