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 질서를 주도하면서 개방과 자유무역을 주창했다. 반면 유럽은 미국과 비교하면 전통적으로 폐쇄적이라는 인상이 더 짙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워싱턴 소재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저먼 마셜펀드’의 9월 조사에서 ‘무역이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60%에 그친 반면 유럽인은 69%가 동의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저먼 마셜펀드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영국 등 7개국에서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저먼 마셜펀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마셜플랜으로 유럽이 다시 일어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 정부의 출자로 1972년 설립된 무당파 싱크탱크로 미국과 유럽의 이해와 협력을 높이는 연구를 주도한다.
조사 결과 미국인의 57%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보다 없어지는 일자리가 더 많다’고 응답했다. 2005년 같은 조사 때는 이렇게 응답한 사람이 51%였다. 자유무역으로 없어지는 일자리가 더 많다고 응답한 유럽인은 2005년 50%에서 올해 46%로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조사 결과는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경제가 악화됨에 따라 미국에서 ‘쇄국주의’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해석했다.
개방과 폐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미국 경기가 최근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반면 유럽 경제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세에 접어든 것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은 개방에 대한 또 다른 척도인 외국인 투자와 이민에 대한 인식에서도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외국 기업의 자국 내 투자에 대해 미국인들은 40%가 반대했고, 유럽인들은 30%만 반대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율도 지난해 64%에서 올해는 60%로 떨어졌다.
이민자에 대한 인식에서도 전통적으로 개방적이던 미국인들은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52%만이 ‘이민자들이 하이테크 산업에 기여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반해 독일은 74%, 영국은 68% 등 유럽에선 평균 57%가 이민자들의 기여도를 높이 평가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를 반영하듯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도하 라운드’ 세계 자유무역 논의에 대해 재고해 보겠다”며 “자유무역으로부터 미국의 기업과 일자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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