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릴 곳은 없고…” 은행 예산편성 2007 ≥ 2008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해외차입 금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최근 만난 신상훈 신한은행장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해외자금 차입 시 기준금리인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자금거래 금리)가 연 6.7%대로 9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은행권의 해외자금 조달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 행장은 “내년에는 최대한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은행을 경영할 수밖에 없다”며 긴축경영에 나설 뜻을 밝혔다.

동아일보가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외환 등 6개 시중은행 전략기획팀을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은행이 내년 예산을 동결하거나 예산안 증가율을 올해보다 크게 낮추는 쪽으로 새해 경영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은행들 “허리띠 졸라매자”

우리은행은 전년 대비 예산안 증가율을 올해 15%에서 내년에는 7∼8%로 낮추기로 했다.

우리은행 전략기획팀 정기화 부장은 “전산시스템이나 교육, 비이자부문 수익 강화를 위한 전략사업 등 미래를 위한 투자는 과감하게 하되 물품 등 일상적인 경비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내년 예산안 증가율을 올해 7.7%에서 3∼4%로 줄이기로 했다. 신한은행 측은 “내년에는 경비 효율성 강화가 은행 내부적으로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행도 긴축 분위기다. 최인규 국민은행 전략기획본부장은 “아직 사업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은행 경영 여건이 어려워져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기 위해 ‘종이 없는 은행(PPR)’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은행 창구에 종이 전표 대신 전자단말기를 배치하는 사업으로, 이 기기가 도입되면 고객이 입출금을 하거나 돈을 이체할 때 사용되는 종이 전표가 연간 4억5000만 장가량 사라져 수십억 원의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내년 1월 중 영업점 한 곳에서 시범 운영한 뒤 모든 점포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내년 슬로건을 ‘Back To The Basic(기본으로 돌아가자)’으로 정했다.

이경렬 경영전략본부 부행장은 “볼륨(규모)보다 수익성에 치중하겠다는 뜻으로 무리하게 대출 경쟁에 나서지 않고 조달된 자금 범위 안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영업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외형보다 수익성 중시

은행의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은 ‘머니 무브(Money Move·자금 대이동)’ 현상이다. 은행의 금고에서 예금이 증시로 빠져나가다 보니 여신 자금 조달에 차질이 빚어졌다.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분기(4∼6월)보다 각각 55.5%, 53.9% 감소했다. 또 주요 은행의 2분기 및 3분기 순이자마진은 국민은행(3.48%→3.33%)을 비롯해 우리(2.48%→2.35%) 신한(2.27%→2.21%) 하나은행(2.31%→2.27%) 등이 모두 하락했다.

내년에는 기업대출 규제 방안인 신바젤협약의 시행으로 자산건전성 확보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은행권은 외형 경쟁을 자제하고 내실 위주의 경영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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