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서 영향력 계속 확대
한국도 자산규모 - 자율성 더 키워야
세계적 금융회사인 A사와 B사는 최근 보유외환 등으로 운용되는 국부(國富)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측에 지분 투자를 몇 차례 제안했다. 그때마다 KIC는 “특정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거부했다.
이러는 동안 중국 및 중동 각국의 국부펀드들은 미국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중국 중동 싱가포르의 국부펀드들이 세계적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지분을 잇달아 인수하며 국제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반면 한국의 KIC나 국민연금은 투자 범위가 제한돼 있다며 손을 놓고 있어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한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의 위기는 한국에 절호의 투자 기회인데 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뛰는 해외 국부펀드
자산 규모가 2000억 달러인 중국투자공사(CIC)는 최근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 지분 9.9%를 5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에 앞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9월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 지분 7.5%를 13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는 등 중동 국부펀드들도 금융회사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부펀드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인적 네트워크 확대를 통한 고급 금융정보 획득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 확대 △재무적 수익 창출 등을 노린 장기 투자라고 보고 있다.
우선 CIC가 6월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지분을 인수한 뒤 큰 손실을 봤는데도 이번에 다시 금융회사 투자에 나선 것은 금융 관련 인맥을 넓혀 고급 정보를 얻으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부펀드들은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투자은행 지분을 사들이기도 한다. 금융위기 때 이들 대형 투자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 기는 한국 국부펀드
각국 국부펀드의 공격적인 지분 투자와 달리 한국의 KIC는 채권 위주의 보수적 투자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1월∼올해 10월 전체 위탁자산 200억 달러 가운데 채권에 86억 달러, 주식에 37억 달러 등 123억 달러어치를 투자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보유외환을 위탁받아 자산을 운영하는 만큼 위험도가 큰 지분 투자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수적 자산운용에도 KIC는 출범 초기인 2005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나 중동지역 국부펀드처럼 KIC의 투자방식을 대폭 개편해 세계적인 금융회사 지분 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정경제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 월가에 있는 주요 금융회사의 최근 주가는 가장 높았던 시점과 비교할 때 30∼40% 떨어졌는데도 한국이 잘못된 규정 때문에 중요한 투자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KIC도 이에 일부 공감하고 있다. 홍석주 KIC 사장은 “다시 투자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면서도 “정보 교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라도 세계 금융시장 중심부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국민연금 등 전략적 투자 필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재경부는 앞으로 KIC의 투자를 제약하는 규정들 중 일부를 수정키로 했다. 내년부터 위탁자산 규모를 300억 달러로 늘리는 한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기금의 일부를 KIC에 맡겨 운용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은 “KIC의 경우 비상시를 대비한 보유외환을 운용하는 만큼 자기자본을 직접 운용하는 외국의 국부펀드와 같은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기금의 일부를 KIC에 맡기거나 자체적으로 해외 금융회사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공단 측은 난색을 표했다.
오성식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지금까지 실적을 내지 못한 KIC에 기금을 맡기기 힘든 데다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해외 부문에 직접 투자하는 것도 위험도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세계 국부펀드의 글로벌 금융회사 투자 현황 국부펀드 투자 시기 투자 대상 투자 규모 중국투자공사(CIC) 12월 모건스탠리 지분 9.9% 50억 달러 중국투자공사(CIC) 6월 블랙스톤(사모펀드) 지분 9.3% 30억 달러 싱가포르투자청(GIC) 12월 UBS 전환사채(지분 9% 상당) 97억5000만 달러 싱가포르 테마섹 12월 메릴린치 지분 50억 달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청(ADIA) 11월 씨티그룹 지분 4.9% 75억 달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청(ADIA) 9월 칼라일그룹 지분 7.5% 13억5000만 달러 두바이 인터내셔널 캐피털(DIC) 10월 오크지프캐피털 매니지먼트(헤지펀드) 지분 9.9% 12억6000만 달러 카타르투자청(QIA) 9월 런던증권거래소 지분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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