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이상 연체액 작년보다 26% 늘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신용카드를 마구 쓰지 마세요. 나중에 분명히 후회합니다.”
연중 최대 쇼핑 기간인 요즘 미국에선 TV 방송에서 이런 내용의 경고를 하는 전문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유통업체들이 제시하는 파격적인 가격 할인 폭에 마음이 흔들려 신용카드로 물건을 잔뜩 샀다가 나중에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이어 신용카드 위기가 발화할 조짐을 보인다고 AP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AP가 미국 주요 17개 신용카드 회사 자료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10월 기준으로 신용카드 사용액 중 30일 이상 연체한 금액은 173억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26% 늘었다.
신용카드 회사가 신용카드 대금을 받는 것을 아예 포기해 손실 처리한 액수도 10월 기준 9억6100만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18%나 늘어났다.
HSBC, 제너럴일렉트릭머니뱅크 등 대형 금융회사들도 10월 기준 90일 이상 연체금액이 지난해 10월에 비해 50%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카드 연체금액 증가 추세는 11월(최종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어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의 수익성 악화에 ‘신용카드 부실’이 더해져 신용경색이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체율이 높지 않았던 신용카드 부문이 이처럼 어려워진 것은 올해 여름부터 본격화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무관치 않다. 또 미국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는 것도 카드 사용자들의 상환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다 연말에 소비자들을 끊임없이 쇼핑으로 유혹하고 소비자들도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쇼핑문화가 신용카드 부실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에선 11월부터 연말까지 추수감사절 세일→추수감사절 이후 세일→크리스마스 세일→크리스마스 이후 세일 등으로 유통업체들이 파격적인 할인 폭을 제시하기 때문에 소비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 정도다.
이런 소비문화는 경제가 좋을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자칫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세일이 계속되는 12월 이후에는 신용카드 연체금액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용카드 연체금액 급증은 금융시장 전반에도 파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카드 부실이 급증하면서 투자자들의 리스크(위험) 회피로 신용카드 회사들이 자금을 조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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