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이 투자과정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盧대통령땐 투자계획 말뿐 거의 실행 못해”
이건희 회장, 당선인 부담될까 불참 의사
李당선인 ‘경제-수사 별개’ 거듭 참석 요청
“기업의 투자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당선자 앞에서 공(空)수표를 날릴 수 없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주요 그룹 총수들 간의 28일 간담회에선 과거와 달리 투자 확대 계획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서 내년 투자 계획 확대를 발표한 기업 총수는 20명 가운데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3명 정도로 알려졌다. 그나마 기존 확정된 계획보다 늘려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그룹 총수는 김 회장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만날 때는 총수들이 앞 다퉈 투자 확대 계획을 쏟아냈지만, 나중에 거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기업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당선인 앞이라 함부로 얘기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 당선인의 ‘실용적인’ 면모는 간담회 추진 단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인수위원회가 전경련 측에 간담회를 제안한 것은 성탄절 하루 전날인 24일 오후였다. 전경련은 곧바로 회장단에 연락을 취했다.
성탄절 오전까지 모든 기업이 참석 의사를 밝혀 왔으나 ‘비자금 의혹’ 사건 특별검사 수사가 임박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측은 당선인에게 부담을 줄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불참’ 의사를 전달했다.
이를 보고 받은 이 당선인은 “수사는 수사, 경제는 경제다”며 이 회장에게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도록 두 차례나 지시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의 거듭된 요청에 이 회장도 참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보복폭행사건’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도 참모진의 의견과 달리 이 당선인이 나서서 참석하도록 했다고 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당선인 특유의 성격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간담회가 시작된 후에도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풀어 주기 위한 이 당선인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일어서서 탁자용 마이크를 위로 곧추세우고 인사말을 마치자, 이 당선인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 채로 한참 동안 인사말을 했다.
한 참석자는 “당선인이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통해 참석자들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당초 재계 인사 21명이 각각 2분씩 발언을 마친 후 점심식사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개별 발언이 길어지면서 식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총수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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