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사들은 “무사고 운전자는 보험료를 적게 내는 반면 사고가 날 때 너무 많은 보험금을 타 가기 때문에 할인제도를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손보사들이나 당국이 무사고 운전자에 대한 할인율 적용기간을 늘리려는 속사정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2006년 12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자동차 보험료 할인혜택을 주는 무사고 운전기간을 늘리는 것과 관련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손보사들이 장기 무사고 운전자의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 할인율 적용기간을 손보사에 유리하게 조정하는 대신 손보사가 보험 가입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권고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손보사들은 무사고 운전자에 대한 혜택만 줄인 채 금감원의 권고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손보사가 무사고 운전자를 ‘불량 물건(손해율이 높은 보험계약자)’으로 분류하며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금감원이나 보험사 중 어느 곳도 제도 변경의 근본 배경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손보사들이 무사고 운전자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만큼 이해해 달라는 설명뿐이다.
은행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쉬랑스 제도를 종신보험 등으로 확대하는 문제도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원래 취지가 퇴색된 채 은행과 보험업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변질되는 분위기다.
또 내년부터 보험사에 공과금 납부나 계좌이체 등을 허용하는 보험업법 개편안도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른 금융권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부 첨삭하는 식으로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그동안 보험업계가 각종 제도를 바꾸면서 소비자 권익 보호를 약속해 놓고 시간이 지난 뒤 약속을 저버리는 사례가 많았다.
소비자의 신뢰는 감동적인 TV 광고로 억지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고객의 약속을 꾸준히 지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업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인식이 아쉽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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