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중시… “신입으로 들어와 CEO 꿈꿀 수 있는 회사”
취약한 지배구조로 작년 ‘홍역’… 글로벌 마케팅도 숙제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제약업계 1위 회사인 동아제약은 매년 신입사원 공채 시즌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여느 회사와 달리 입사 지원서를 인터넷으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본사나 전국 지점에서 원서를 나눠 주고, 지원자들이 친필로 한자를 섞어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 회사가 불편을 무릅쓰고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회사에서는 입사지원서의 토익(TOEIC) 성적, 학점 등의 서류상 ‘스펙’을 컴퓨터로 분류한 뒤에 일정 기준 이하면 탈락시키는 ‘서류 전형’ 절차가 없다. 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서를 일일이 읽고 능력과 잠재력이 있는 지원자를 가린다.
동아제약 인사담당자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직장이 될지도 모르는 회사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고 입사를 결정할 수 있느냐”며 “자필로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은 지원자의 열정과 한자 실력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강신호 회장의 경영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1>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불사조 정신’
동아제약의 로고는 ‘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198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생명 존중의 제약회사 이미지를 담아 제작했다.
동아제약은 제약업계에서 위기에 강한 회사로 통한다. 외환위기 이후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 부담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던 박카스 비중도 17%대로 떨어졌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발한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위염 치료제 스티렌 등 신약(新藥) 개발에 성공하는 등 체질 개선작업도 진행 중이다.
올해 강신호 회장과 차남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의 경영권 갈등으로 주주총회를 두 번 치르며 지배구조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 직원들이 ‘우리 회사 주식 더 갖기’ 운동을 펼쳐 3% 지분을 확보하는 등 ‘회사 구하기’에 나섰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아제약 직원 가운데 일부는 주식 갖기 운동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동아제약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동아제약의 한 직원은 회사 문화를 ‘거실’이라고 표현했다. 직원들이 가족처럼 부대끼며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 노사의 무(無)분규 전통도 이 같은 ‘신뢰’에서 비롯됐다. 독일 유학파 출신인 강신호 회장은 1975년 당시 사장으로 있으면서 노동조합 설립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노조 설립의 산파 역할을 했다.
<2>최고경영자(CEO)를 키우는 인재사관학교
동아제약의 강점은 인재 양성과 신약 개발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에 있다. 한 직원은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CEO를 꿈꿀 수 있는 회사”라고 동아제약을 소개했다.
실제로 동아제약 임직원 2090명 중 경력사원은 60명에 불과하다. 전체의 97.1%가 공채 출신 사원인 셈이다. 경력사원을 뽑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 P&G처럼 인재를 직접 키우는 인재육성 문화가 곳곳에 녹아 있다. 동아제약은 1970년대에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연수원을 열고 사원 교육을 제도화했다. 또 철저한 공개 채용과 사내 승진시험을 통해 인재를 키우고 있다. 직원들은 매년 정해진 교육 시간을 이수해야 하고, ‘e러닝’ 시스템을 통해 경영 외국어 등 실무지식은 물론 경영학석사(MBA) 과정도 마칠 수 있다.
입사시험만큼 까다로운 대리 승진 시험도 유명하다. 제품 지식과 한자 시험에다 임원 면접까지 치러야 하는데, 합격률이 50%에 그친다. 인재 중시 철학은 신약 개발에도 이어진다. 1977년 설립된 동아제약 연구소에는 연구원을 독려하는 강 회장의 친필 격려문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3>글로벌 인재가 회사의 미래
동아제약을 거쳐 간 인재들도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상희 전 국회의원은 동아제약 상무 출신이다. 장안수 한미약품 사장, 권성배 유유 사장 등 제약업계 CEO들도 동아제약을 거쳤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도 1959년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해 상무를 지냈다.
이런 동아제약의 고민은 최근 경영권 분쟁에서 나타난 것처럼 취약한 지배구조에 있다. 공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생기는 보수적이고 온정적인 조직 문화도 약점으로 꼽힌다. 글로벌 조직 역량을 좀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 회사는 먼저 올해 신입사원 공채에서 해외사업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구조조정으로 해외사업부문이 2006년 18명으로 줄었지만 올해 충원을 통해 24명으로 늘렸다. 2008년에도 어학 실력과 해외 마케팅 등의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력을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자이데나, 스티렌 등의 신약을 중남미와 아시아 시장에 먼저 판매하는 ‘소(小)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하고, 일본 중국 제약회사와 제휴하는 ‘한중일 삼각 R&D 네트워크’를 추진하기 위해 인력의 글로벌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원배 동아제약 사장은 “글로벌 제약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인력 등을 보강하고 있다”며 “국제 특허 등 지적재산권 보호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국제 변호사도 영입했다”고 밝혔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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