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S클래스는 공식 수입사에서는 취급하지 않아 그가 찾은 곳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이른바 '그레이 임포터'(병행수입업체) '더 유니코 오토'.
그는 이 회사가 높은 수준의 보증서비스를 제공하고 서울 시내에 자체 정비소와 24시간 콜센터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차 값을 치렀다.
지방출장이 잦은 그는 차를 바꾸고 나서 연료비 지출이 월 200만~300만원에서 150만~200만원으로 줄어 "매일 돈을 버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에 관한 소문을 듣고 친구 3명도 같은 차종을 구입했다.
그와 친구들이 구입한 S320 CDI의 대당 가격은 1억4800만원. 공식 딜러에서 S클래스 가격은 배기량에 따라 1억6000만~2억6000만 원 선이다.
●'거품 빠진 수입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수입차 시장에서 병행수입업체(그레이 임포터)가 뜨고 있다.
그레이 임포터란 공식 딜러가 아닌 일종의 무역업체로 차량을 본사로부터 구매하는 게 아니라 현지 딜러로부터 조달해 수입 판매하는 업자들.
신라면을 농심 본사가 아닌 이마트나 롯데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뒤 이를 해외 교포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현지 본사→수입업체→딜러 등 3단계를 통해 유통되는 공식 수입차량과 달리 딜러→그레이 임포터(수입 및 판매)의 2단계만 거치기 때문에 중간 마진이 빠져 차 값이 약 20% 싸다.
한미 FTA 이후 그레이 임포터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앞으로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을 들여올 경우 관세 8%마저 빠져 가격경쟁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
현재 공식딜러가 4400만원에 판매하는 미국산 중형 승용차를 그레이 임포터들은 3600만~3700만 원 선에 팔고 있다. 앞으로 관세마저 빠지면 3300만~3400만 원 선으로 값이 떨어져 웬만한 국산 차종과 경쟁도 가능해 진다.
앞으로 한·EU FTA까지 체결된다면 유럽산 자동차도 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입업체들은 "마케팅 비용은 수입업체와 딜러들이 쓰는데 과실은 그레이들이 따 먹는다"며 그레이 임포터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과 공식 딜러 못지않은 서비스를 앞세우는 그레이 임포터들을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레이 보험'도 출현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등록된 수입차는 모두 5만6213대. 이중 그레이 임포터들이 판매한 수입차는 7426대로 약 1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인 SK네트웍스가 그레이 임포터로 나서는 등 수입업체 수 및 판매량이 더욱 늘어 올해에는 1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그레이 차량'이 증가함에 따라 '그레이 보험'도 등장했다.
쌍용화재는 그레이 임포터 수입 차량 전용 '신차품질인증보험'을 내놓고 있다.
이 보험에 가입하면 전국 20여개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에서 2년 4만㎞ 까지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다.
쌍용화재 기업보험팀 측은 "앞으로 그레이 차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보험 상품도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좋은 그레이', '나쁜 그레이'
최근 서울 강남 일대에 속속 문을 열고 있는 그레이 임포터들은 자본금 30억원이 넘는 중견 기업급.
이들은 "공식 딜러 못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겠다"고 벼르지만 여전히 일부 자동차 매매단지와 인터넷 등에는 중고차를 새 차로 속여 팔거나, 차 값을 허위로 신고해 관세를 줄이는 등의 방법을 쓰는 '나쁜 그레이'들이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도요타 하이브리드 차량을 수입 판매하는 선우모터스 강민규(33) 사장은 "일부 비도적적인 업체들 때문에 합법적인 그레이 임포터 전체가 매도당하는 경향이 있다"며 "소비자들이 그레이 차량을 구입할 때는 수입업자의 명성과 실적을 확인해 보는 게 좋다"고 권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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