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사 IB인력 골드만삭스 10분의 1 불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최근 내놓은 ‘2007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인력 채용 수준은 61개국 중 42위에 머물렀다.
금융인력네트워크센터에 따르면 2006년 말 국내 10개 증권사의 IB 부문 인력은 1230여 명 수준으로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최근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이 “해마다 30억 원을 투자해 금융 인력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이러한 현실은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글로벌 금융정보업체 ‘톰슨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M&A 시장의 거래 규모(발표 기준)는 737억 달러로 2006년(414억 달러)에 비해 78% 급증했다. 그러나 1∼10위 자문사는 모두 외국계로, 규모로는 636억 달러(86%)에 이른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글로벌 IB가 될 수 있는가는 누가 그 조직을 이끌 것인가에 달려 있다”며 “글로벌 업체와 경쟁할 인재 확보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규모만 키워서는 ‘큰 덩치에 머리는 빈 공룡’이 탄생한다는 것.
○ 정보-인맥-선진 금융기법 등 아직 걸음마
외국계가 오랫동안 쌓아 온 네트워크와 평판을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이 지난해 성공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기업 M&A는 자문사였던 ‘씨티글로벌’이 먼저 인수 의향을 타진하면서 시작됐다. 씨티 측은 자체 정보망을 통해 두산이 몇 해 전 비공개로 미국의 ‘밥캣’ 인수를 추진하다 실패했으며, 당시 이 회사가 매물로 나온 사실을 확인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자금조달에서 국내 증권사가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산업은행이 최근 미국에서 발행한 ‘글로벌 본드’는 골드만삭스 HSBC 등의 외국계 IB 5개사를 통해 진행됐다.
수출입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해외 IB는 다양한 ‘글로벌 전주(錢主)’를 알고 있어 발행 물량을 모두 팔아 준다”며 “채권 발행에 실패하면 신인도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를 통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선택과 집중’… 맥쿼리의 성공 사례
성공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성공한 후발주자도 꽤 있다.
호주 맥쿼리은행은 1969년 영국 상업은행의 자회사(HSA)로 출발했지만, 기존 IB가 외면했던 사회기반시설(SOC) 투자에 특화해 이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 회사의 자산은 1997년 말 61억 호주달러(약 5조 원)에서 2006년 말 1061억 호주달러(약 89조 원)로 급증했다.
JP모건은 상업은행의 노하우를 살려 기업 인수에서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에 특화해 글로벌 IB로 성장했다. 임석정 JP모건 한국대표는 “다양한 금융기법에서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선진 IB와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며 “후발주자로서 글로벌 IB로 성장하려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한 뒤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증권의 휠라코리아 글로벌 브랜드 인수, 산업은행의 LG전자 유로본드 5억 달러 발행 등 국내 금융사도 조금씩 IB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김범준 한국투자증권 IB본부 전무는 “한국은 세계 11위권의 경제 규모, 아시아 2위의 채권시장 등 IB로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며 “국내 시장에서 쌓은 좋은 성과는 글로벌 IB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강조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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