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이에서 인기 높은 컴퓨터 게임 중 ‘심시티’라는 게 있다. 황량한 산을 정리하고 도로와 집을 건설하면서 차근차근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게임이다. ‘도시계획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도 불린다. 심시티에 푹 빠져본 적이 있다면 아예 ‘도시계획가’를 직업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물론 현실과 게임은 다르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주민들과 협의해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주민들이 자신의 형편만 내세우거든요. 사업계획 수립 이후에도 계속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도시계획과 맞물리도록 조율해야 합니다.” 도시계획가로 활동 중인 대한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 도시정비팀 김석민(31) 대리는 실제 업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김 대리는 한양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주공의 도시정비팀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시절 도시 개발에 관심이 많아 민간 시행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졸업 후 건설사에서 일하다가 다시 주공의 도시정비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 현장 조사-주민 의견 청취해야… 외근 잦은 편
도시계획은 국토계획, 지역계획, 도시계획, 단지계획, 개별필지계획 등으로 나뉜다. 김 대리는 단지계획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단지계획의 첫 작업인 후보지 선정에서부터 개발 계획 수립과 인허가를 관리한다.
업무 과정마다 현장조사와 주민 의견 청취는 필수. 이 때문에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외근을 하며 현장과 부닥쳐야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직업 전문가 867명을 대상으로 10년 후 제조업(정보기술 분야 포함) 유망 직업을 조사한 결과 도시계획가가 4위에 올랐다.
영역별로는 △승진, 자기계발, 이직 등 발전가능성 영역 2위 △전문지식, 업무자율성, 사회적 평판 등 직업전문성 영역에서 2위 △임금이나 승진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 고용평등 영역에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급여와 복리후생 등의 보상영역은 6위로 다소 낮았다.
도시계획가의 활동 영역은 매우 넓은 편이다. 도시계획을 세우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도시설계 및 개발에 정통해야 하고 부동산과 금융도 잘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도시계획가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뿐 아니라 공기업, 국토연구원, 교통개발연구원, 민간 건설업체, 시행사 등에 폭넓게 포진해 있다.
김 대리는 “여성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며 “현장근무가 많아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수렴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세심함과 꼼꼼함을 살린다면 남성보다 뛰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국내에는 5801명의 도시계획가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294만 원으로 조사 대상 직업 중 16위이고 평균 연령은 41세, 주당 근무시간은 45시간이었다.
그는 도시계획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유럽 여행을 권했다. “중세 환경을 간직하면서 현대 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도시를 잘 보전한 경우가 유럽에 많아요. 특히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보존과 개발의 양대 가치를 잘 조화시킨 대표적인 도시여서 매우 부러웠지요.”
보람은 언제 느낄까.
김 대리는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서 잘 짜인 도시를 보면 ‘내가 일조했다’는 느낌에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며 “주민 의견 조율이 힘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였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우영(26·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이희진(22·고려대 경제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도시계획가가 되려면
대학에서 도시계획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도시계획가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의 중앙대 단국대와 지방의 동아대 목포대 경주대 등에 도시계획학과나 도시지역계획학과 등이 개설돼 있다. 이 외에도 대학에서 건축학이나 조경학, 토목학 등을 전공하고 도시계획 관련 과목을 이수한 후 도시계획가로 나서는 사례도 많다. 도시계획기사, 건축기사, 토목기사, 교통기사 등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유리하다. 일부 공기업은 관련 자격증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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