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 ‘메릴린치 투자’에 대한 평가는?

  • 입력 2008년 1월 18일 03시 00분


高수익 좋지만 주가하락 우려도

‘세계 금융의 중심부에 일단 발은 담갔다. 안전할까.’

보유외환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가 미국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키로 함에 따라 향후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본보 16일자 A6면 참조


한국투자公, 美메릴린치에 첫 지분 투자

금융 전문가들은 “배당 조건은 매우 좋지만 주가에 부정적인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아 다소 불안한 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 3가지 불안 요인

KIC는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로 전환되는 우선주를 20억 달러에 인수하는 대가로 약 3년 동안 연 9%의 배당을 받는다.

이런 조건에 대해 금융계는 “KIC의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배당 때문에 나중에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메릴린치가 연 9%에 이르는 배당을 하기 위해 금융채를 발행하는 등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실 채권 상각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한 자금 수혈이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악재로 돌아오는 셈이다.

또 KIC가 인수한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증시에 유통되는 물량이 늘어 주식 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특히 이번에 메릴린치가 유치한 자본에는 KIC 외에도 쿠웨이트투자청과 일본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이 포함돼 있어 유통 주식이 대폭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로 막대한 손실을 본 메릴린치가 앞으로도 높은 위험이 따르는 고수익사업에 투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괜찮은 투자” 평가 많아

KIC의 이번 투자는 메릴린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세 차익만을 노린 종전의 재무적 투자와 달리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동참해 투자수익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런 전략적 투자의 과정이 한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월가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메릴린치의 주요 주주로서 선진 투자기법을 배울 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 이번 거래에서도 메릴린치의 새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한국계 넬슨 최 씨가 큰 역할을 하는 등 국제 금융 거래에선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

투자 시점 자체도 좋았다는 평가가 많다. KIC는 지난해 12월 중순경 메릴린치에 대한 실사를 한 결과 △기업가치와 비교한 주가가 바닥권이고 △글로벌 자산운용 부문의 수익이 안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3으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았다. 이는 기업의 자금이 많은데도 주가가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다는 뜻이다.

또 KIC는 당초 씨티그룹을 투자 대상으로 거론했지만 소매 부문 비중이 커 경기가 나빠질 경우 위험하다는 점을 감안해 제외했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도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릴린치 서울지점 전무를 지낸 이원기 KB자산운용사장은 “미국 투자은행 주가가 최근처럼 많이 떨어진 전례가 없다”며 “메릴린치가 망하지 않는 한 KIC의 투자는 일단 ‘기본에 충실한 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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