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및 시장 친화적 정책 추진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업들의 대관(對官)업무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관업무는 기업 활동과 관련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수시로 접촉해 법규나 정책 변화 등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미리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말한다. 특정 사안과 관련해 기업의 처지나 주장을 정부에 전달하거나 설득하기도 한다.
“기업인 소집 요식행위 줄 듯”
17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기업인과 만나는 관료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기업들이 대통령에게 곧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과천청사 내 경제부처를 주로 담당하는 대기업 A사의 한 임원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8일 재계와의 만남에서 ‘나에게 언제든 직접 전화해도 좋다’고 말한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관료들이 이제 기업의 얘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기업들의 건의가 청와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관료들에 의해 곡해되거나 거꾸로 보고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기업들의 불만도 ‘엄살’쯤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고 했다.
B사 관계자도 “과거에는 정부가 실적관리나 요식행위 차원에서 기업인들을 소집해 놓고는 의견도 안 듣고 자기들 마음대로 밀어붙이는 사례가 많았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이런 관행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음 앞선 지원에 실천도 따르길”
C사의 한 부사장은 “관료들이 요즘은 밥 접대 말고 차기 정부가 공약한 정책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는 것을 ‘최고의 접대’라고 한다”며 “각종 사안에 대해 기업의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뭐냐고 묻는 전화가 요즘 종종 걸려 온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이동통신업체는 정부로부터 “통신료를 인하하려면 가능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요청을 받고 몇 가지 방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조직 개편에 거는 기대도 컸다. 한 기업체의 대관업무 담당 부장은 “예전에는 한 가지 사안에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었는데, 이들 부처 간 의견이 다를 때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다만 한 대기업의 임원은 “관료들이 입으로는 기업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도 옛날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사례가 여전히 있다”며 “몸이 마음을 따라 움직이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정부조직 개편보다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권한이 어떻게 설정되느냐가 중요하다”며 “규제완화 등 친기업 정책이 가시화되면 본격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