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환자에게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은 것”
“美경제에 더 큰 부담… 거품 재생산” 우려도
세계 금융시장 불안 해소 상당시간 걸릴 듯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2일(현지 시간) 예정에 없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내리면서 유럽 증시에 이어 23일 한국 증시도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투자은행(IB)들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드러날 때마다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는 ‘쳇바퀴’가 완전히 멈추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날 “환자에게 아드레날린(근육자극호르몬) 주사를 놓은 것”이라고 평가했고 미국 포천은 “‘처방’이 질병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까”라고 진단했다.
지금 부실을 털어내며 미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지 않은 채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대처하면 상처는 결국 곪아 터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자산 거품이 부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글로벌 주가 폭락→미국 금리 인하→글로벌 증시 반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글로벌 주가 폭락→미국 금리 인하….’
지난해 3월 12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업계 2위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을 선언한 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런 시나리오를 반복해 왔다. 이번에 FRB가 금리를 낮춘 것도 미국 대형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생긴 사상 최대 규모의 손실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증시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을 뒤흔들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경기 부양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푸는 바람에 잉태됐다는 것. 돈을 풀었다가 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자 경기 침체 우려로 기준금리를 2001년 1월(6.0%)부터 2003년 6월(1.0%)까지 지속적으로 내렸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초(初)저금리시대’와 ‘과잉 유동성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는 활력을 되찾았으나 돈이 과도하게 풀리면서 가계 부채의 급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급등,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다시 자금줄을 옭아매야 할 시점이 된 것. 이후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2년간 1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0%에서 5.25%까지 올렸고 서서히 연체율 증가, 가계 소비 위축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버블’이 낀 주택가격보다 더 많은 대출을 해 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들의 대출 자산은 급속히 부실화했고 이곳에 투자한 모(母)회사인 대형 투자은행은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냈다.
○ 돈 풀기는 대증요법일 뿐
FRB의 이번 금리 인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돈줄을 조이면서 촉발된 것인 만큼 일단 돈줄을 풀어 상황을 호전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FRB는 필요하면 1, 2번 더 금리를 내릴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이번 조치는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해결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금리 인하는 향후 미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주며 ‘실탄’만 소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주택 가격을 비롯한 자산가격의 버블과 물가 상승 압력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더 금리를 내리면 거품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문제 해결만 뒤로 미루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전체 부실 규모는 전망 주체에 따라 최저 800억 달러(약 76조 원)에서 최고 3500억 달러(약 333조 원)로 추정할 정도로 불확실하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잔뜩 끼어 있는 것이다.
메릴린치가 당초 2007년 4분기(10∼12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손실 규모를 8억 달러로 발표했지만 98억 달러로 확정하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것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다 금리 인하는 달러 약세로 이어져 최근 17년 동안의 최고 물가 상승률(연 4.1%)로 고전하는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등 ‘쌍둥이 적자’로 허덕이는 미국의 부채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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