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조모(51) 씨는 주가가 한창 높던 지난해 여름 중국펀드 등 적립식 펀드 7개에 매달 100만 원을 쪼개 넣으며 펀드 투자를 시작했다. 펀드 1개당 월 14만2900원꼴이다.
최근 주가가 폭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조 씨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길게 보고 시작했고, 매달 넣는 돈도 아직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최모(44·여) 씨는 새해 들어 주가가 폭락한 뒤 새로 가입할 펀드를 알아보고 있다. 이미 적립식 펀드 2개에 650만 원을 넣어 두었지만 주가가 내렸을 때 투자하면 나중에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국내외 증시가 수시로 출렁이고 있지만 적립식 펀드에는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 ‘장기 투자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됐고, 별다른 투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 두려는 사람들이 적립식 펀드 투자를 늘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적립식 펀드에 꾸준히 자금 유입
최근 주가가 떨어지면서 주요 은행의 평가액 기준 잔액은 계속 줄고 있다.
우리은행의 적립식 펀드 잔액은 평가액 기준으로 △21일 7조4829억 원 △22일 7조2842억 원 △23일 6조8943억 원으로 집계됐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가 동반 하락했던 22일에도 주요 은행의 적립식 펀드 잔액(입금액 기준)은 꾸준히 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하루 국민은행의 적립식 펀드 잔액은 165억 원, 신한은행은 103억 원, 하나은행은 70억 원이 늘었다.
올해 1월 들어 21일까지 각 은행의 일일 평균 증가액이 60억∼200억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증시 폭락에도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은 셈이다. 23일에도 국민은행의 적립식 펀드 잔액은 168억 원 늘었다.
이에 따라 거치식을 포함한 전체 주식형 펀드 잔액도 속도가 주춤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2일 하루 주식형 펀드 잔액은 국내 펀드가 1913억 원, 해외 펀드가 350억 원 늘어 전체 잔액이 2263억 원 증가했다.
○ 장기 투자 문화 정착
주식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적립식 펀드의 잔액이 줄지 않는 현상을 많은 증시 전문가는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징후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 개인상품부 박지우 부장은 “일부 거치식 상품을 제외하면 최근 요동치는 시장에서도 한꺼번에 돈을 빼 가는 동요는 감지되지 않았다”면서 “장기·분산 투자 중심의 안정적 투자 문화가 정착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금액을 통장에서 매달 자동 이체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의 특성이 시장 충격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적립식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은 적금을 들 듯 처음부터 “시간을 두고 투자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의 변화에 대한 대응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물론 당장 환매하기에는 주가가 너무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너무 많이 내린 만큼 오를 때까지 좀 더 지켜보려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이다. 메리츠증권의 박현철 연구원은 “이미 원금 손실을 막기 위한 환매 타이밍은 늦었다”면서 “하반기(7∼12월)에 주가가 오른다는 기대심리가 있어 돈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주식 가격이 낮을 때 싼값에 보유한 주식의 양을 늘려 장차 수익률을 높이려는 ‘적극적’ 매입세도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적립식 펀드 자금이 지금은 증권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글로벌 증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투자증권 박승훈 펀드분석팀장은 “현재는 적립식 펀드 외에 다른 투자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자금이 머물러 있지만 주식시장의 불안 상황이 지속되면 투자자들이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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