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길라잡이]한국 증시 맷집 좋아진 두가지 이유

  • 입력 2008년 1월 26일 02시 48분


공평하지 못한 일은 주식시장에서 다반사로 벌어진다.

연초부터 전 세계의 주가가 기록적인 폭락을 한 이유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였다.

그러면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미국의 주식시장은 얼마나 빠졌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난해 4분기(10∼12월) 최고점 대비 현재의 하락률을 비교하면 미국 시장이 가장 덜 빠졌다는 점이다. 마치 사고차량에 같이 타고 있던 승객들은 중상을 입었는데 정작 사고를 낸 운전자는 멀쩡한 것처럼.

이런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벌어진 건 이번만이 아니다. 세계 주가가 동반 폭락했던 9·11 테러 때도 그 사건의 현장이던 미국의 주가는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덜 하락했다. 미국이 중심에 있었던 정보기술(IT) 산업의 거품 붕괴 때도 역시 미국 주가는 덜 빠진 편에 속했다.

이는 미국 시장의 충격 흡수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의 주식시장을 작은 호수라 한다면 미국 시장은 넓고 깊은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작은 호수 중 하나인 한국은 이번에 어땠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더도 덜도 없이 딱 중간 정도만 하락했다.

과거 세계 증시가 불안정할 때 한국은 평균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하락률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최근 외국 명차와 충돌 시험하는 장면을 내보내 화제가 된 한국의 신차 광고처럼 국내 증시도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 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와 관련된 금융에 직·간접적으로 말려들어간 규모가 미미해 이번 위기에서 자유로운 시장 중 하나라는 것이다.

둘째, 한국 주식시장이 하루 1조 원 규모의 외국인 투매를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를 시장의 깊이 또는 ‘시장 심도(depth)’라고 표현하는데, 심도가 깊다는 것은 유동성이 뛰어나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도약했다는 것은 그동안 가설로만 얘기됐지만 이번 세계 증시 폭락 사태를 통해 현실로 입증됐다. 한층 성숙해진 한국의 증시가 단지 ‘외부 요인’으로 충격을 받았고 주가는 다시 저렴해졌다는 데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겠다.

강성모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상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