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지난해 ‘Good memory’(좋은 기억)란 기업 슬로건과 함께 발표한 ‘하이닉스의 꿈’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하이닉스 임직원들에게 꿈은 ‘밥’과 같다.
경영난으로 일감이 줄어들고 연봉이 삭감되며 ‘밥그릇’이 작아질 때마다 그들은 그 빈 공간을 ‘언젠가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전문회사가 될 것’이라는 꿈으로 메웠다.
그 꿈을 향한 도전은 하이닉스 전사(戰士)들을 ‘불가사(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로 만들었다.
[1]‘밥그릇’ 작았지만 꿈 하나로 버텼다
‘하이닉스 주식 값의 폭등과 함께 한국 경기침체의 불황을 타파.’
‘하이닉스,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제1의 반도체 업체로 발돋움할 발판 마련.’
‘하이닉스 주가 1만 원 돌파!’
이 회사의 2002년 1월 2일자 신년 사보(社報)에는 ‘미리 보는 2002년 10대 뉴스’라는 제목으로 사원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당시 최악의 유동성 위기를 겪던 그들은 내일을 보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오늘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그런 꿈이 그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88운동’(오전 8시 이전 출근, 오후 8시 이후 퇴근), ‘IO 3050’(투입·Input 비용 30% 절약, 산출·Output 효과 50% 향상) 같은 회사 살리기 캠페인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한 임원은 “88운동 당시 누구 한 사람 불평불만 없이 참여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런 투혼(鬪魂)은 2005년 중국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해외로도 ‘수출’됐다. 당시 중국인들은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경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나 몸살이 난 한 한국인 여성 직원이 링거 주사를 맞아가면서 기술 지도를 계속하자 현지 직원들도 크게 감동했다는 일화는 사내(社內)에서 유명하다.
중국 정부 당국자들도 “하이닉스를 보니까 한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했는지 알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런 하이닉스의 역동성은 상명하복(上命下服)에 따라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이 회사 전략기획실 김진신 대리는 “하이닉스는 최고경영진 몇 명이 아니라, (나 같은) 실무진이 이끄는 회사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며 “그래서 ‘덩치는 대기업이지만, 정신은 벤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하이닉스가 ‘제2의 창업’을 내세우며 비(非)메모리 반도체인 CIS 사업 진출을 선언한 것도 과장 차장급 실무진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것이다.
[2]칭찬으로 기 살리기…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는 1999년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하고 2001년 회사 이름을 하이닉스로 바꿨다. 그 다음 해인 2002년 회사에서는 임직원 1535명을 대상으로 ‘하이닉스의 기업문화는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있다고 생각한다’는 긍정적 답변이 7.9%에 불과했다. 절대 다수가 없거나(62.6%) 잘 모르겠다(29.5%)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하이닉스 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무엇이냐’는 주관식 물음에 대한 대답이 흥미로웠다. ‘불굴의 투지와 추진력’ ‘인간적인 정(情)’이란 다소 상반된 두 표현으로 집약됐기 때문이다.
박현 홍보팀 과장은 “당시 조직원들이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현대 특유의 저돌성과 LG 전통의 인화(人和)가 융합돼 발전적인 ‘하이닉스 웨이(Way)’로 승화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과감한 투자 결단이 필요한 대표적 장치산업이면서 초(超)미세 공정에서의 철저한 협업이 필요한 반도체 기업에 ‘투지와 정(情)의 조합’은 적잖은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특히 하이닉스 특유의 칭찬 문화는 정에서 비롯됐지만 서로의 투지를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2000년 10월 사내 인트라넷에 ‘칭찬합시다’ 코너가 만들어졌고, 2002년에는 ‘이달의 칭찬인’ 상이 제정됐다. 당시 회사는 “칭찬 문화가 경영 정상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제조본부의 한 임원은 “방진복을 입고 일하는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는 서로의 눈만 보인다. 상하 및 동료 간에 인간적 정이 쌓이지 않으면 눈빛으로 대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3]노조는 있지만 ‘노사(勞社)’는 없다
“죄인의 심정으로 채권단에 눈물로 호소합니다. 노조원과 협력업체 근로자의 자존심과 혼을 담보로 내걸겠습니다. 항구적인 무(無)분규와 세계 최고의 품질로 보답하겠습니다.”
2001년 8월 하이닉스 노동조합은 회사의 운명을 손에 쥔 채권단에 ‘독자 생존의 길을 열어 달라’며 이렇게 호소했다.
그들은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세계 4대 반도체 D램 제조업체(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 인피니언) 중 하이닉스에만 노조가 있지만 노사 갈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이닉스 노조에는 “노조가 반도체 회사의 걸림돌이 아닌 경쟁력의 원천임을 보여 주겠다”는 강한 신념이 전통처럼 내려온다.
2002년 초 김준수 청주·구미 노동조합 신임 위원장이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 회사의 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라고 취임사에서 밝히자 박상호 당시 사장은 “6개월간 무보수로 회사에 봉사하겠다”고 화답했다.
노조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임금교섭의 전권을 회사에 위임하기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이런 하이닉스에 대해 ‘회사보다 더 회사 같은 노조’ ‘노조보다 더 노조 같은 회사’라고 평가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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