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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는 대우건설이 지은 ‘대하 비즈니스센터’가 있다. 한국 기업들이 주로 입주한 이 건물에는 외환은행(14층), 우리은행(11층), 신한은행(2층) 지점들이 입주해 있다.
베트남 현지 근무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한 은행의 전직 지점장은 “현지 은행지점의 업무는 기업거래가 대부분이며 그중 80%는 한국 기업, 나머지 20%는 한국에서 투자를 받은 베트남 기업”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은행들이 앞 다퉈 해외로 진출하고 있지만 정작 현지화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 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의 해외 부문이 가장 우수했고 기업은행이 가장 뒤처져 있었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기업은행의 해외부문 실적을 금융감독원이 항목별로 집계해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대통합민주신당) 의원에게 최근 제출한 자료에 따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 해외부문 순이익 0.8∼11.5%
금감원이 제출한 자료를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 △독립성 △당기순이익 중 해외부문 비중 △현지 예금비율 △현지 종업원비율 △지원부서의 규모 등 8개 항목으로 나눠 평가한 결과 국내 은행들은 공통적으로 해외부문의 비중이 현저히 낮았다.
은행들이 지난해 1∼6월 올린 당기 순이익 중 해외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0.8∼11.5%에 그쳤다. 외환은행이 11.5%로 가장 높았고 국민은행이 0.8%로 가장 낮았다. 이에 비해 미국의 씨티은행은 2006년 해외부문에서 순이익의 47%를 올렸다.
현지의 대출 대비 예금을 분석한 결과는 기업은행(18%)과 하나은행(22.6%)이 특히 낮았다. 이 비율이 낮은 것은 은행들이 현지에서 예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해외지점 중 현지인 비율은 72∼86%였지만 창구 업무를 맡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었다. 조사한 은행 중 외국인 지점장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은행들의 전체 지점 중 해외지점 비중은 0.4∼6.8% 수준에 그쳤다.
○ 기업 따라 진출, 현지화 먼 숙제
2000년대 초반까지 은행들은 주로 대기업을 따라 해외로 나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기업이 현지 공장을 세우면 중소기업들이 따라 나가 공단이 생긴다. 이 공단에 입주한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 위해 은행이 그 주변에 지점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서 한국의 시중은행들끼리 한국 기업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
한국의 금융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정부의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해외 진출과 현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영업을 하기에는 인력과 노하우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중국에서 4년 동안 일하다 귀국한 한 은행의 관계자는 “본점에서도 정보가 없다 보니 중국 기업에 대한 대출을 신청하면 승인까지 몇 개월씩 걸리고 허용되더라도 금액이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현지 금융에 대한 전문성 부족은 은행들의 해외 파견 시스템과도 관련이 있다.
상당수 은행들은 아직도 국내에서 업무 실적이 좋은 직원들을 선정해 3, 4년씩 해외 근무를 시키고 있다. 이렇게 ‘보상 차원’에서 한 차례 해외 근무를 하는 직원들만으로 전문성을 높이면서 현지 영업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명확한 전략과 타깃 정해야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누구를 영업의 타깃으로 할 것인지, 어떤 전략으로 이들에게 접근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타깃을 명확하게 잡는 것이 중요하며 전략적으로는 현지 진출의 목적에 맞는 현지 은행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이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스페인계 은행인 BSCH는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은행 순위에서 70위권이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가계금융에 주력하며 중남미 은행을 집중적으로 인수했다.
또 덩치를 키운 뒤 영국계 은행까지 인수해 2006년 세계 은행 순위 10위로 뛰어올랐다.
박동창 하나금융그룹 글로벌 전략 고문은 “국내 은행들은 소매금융, 인터넷뱅킹에 강점이 있다”며 “문화가 비슷하고 금융 개방이 덜 된 아시아 지역에 진출해 BSCH와 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