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 골목 하나 차이로 ‘봄과 겨울’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17분


29일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물품배송장에서 설 선물세트 배달을 위해 배송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29일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물품배송장에서 설 선물세트 배달을 위해 배송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설을 앞두고도 손님이 많지 않아 썰렁한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대목이 없어진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박영대  기자
설을 앞두고도 손님이 많지 않아 썰렁한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대목이 없어진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박영대 기자
서울 중구 남창동 남대문시장과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행정 구역상 다른 동(洞)이지만 실제로는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둔 서울의 쇼핑 명소(名所)다.

설을 일주일 남짓 앞둔 29일 오후 두 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백화점은 북적이는 손님들로 명절 대목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은 찬 겨울바람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경기 때문에 한숨을 쉬고 있다.

○ 명절이 반가운 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지하 선물 배송 코너.

배송을 의뢰하는 고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이지만 여느 주말 못지않은 분위기였다. 젊은 주부부터 노신사까지 고객층도 다양했다. 굴비 선물세트 코너의 한 직원은 “지난 주말부터 선물세트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하지만 본격적인 대목은 이번 주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본점 접수센터에서만 하루 300여 명의 고객이 선물세트 배송을 의뢰한다”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 6개 매장(지난해 3월 문을 연 죽전점 제외)에서 설 선물세트를 전시한 후 일주일간 매출은 지난해보다 37% 늘어났다. 특히 고급 선물세트를 중심으로 판매가 부쩍 증가했다고 한다.

이 백화점 이종묵 신선식품 팀장은 “1450세트를 준비한 고급 한우 선물세트가 다 팔려 150세트를 추가로 주문했다”며 “600세트를 준비한 45만∼75만 원짜리 최고급 세트는 28일에 매진됐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설 직전에 비해 선물세트 매출이 각각 38%와 43% 늘었다고 밝혔다.

○ 재래시장 “대목 없어진 지 오래”

그러나 이웃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손님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가는’ 백화점과 달리 ‘서민’들이 찾는 재래시장의 경기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가(低價)를 앞세운 대형마트의 공세에 밀려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간혹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가긴 하지만 구경만 할 뿐 좀처럼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상인들은 말한다.

여성복을 판매하는 박모(여·50) 사장은 “몇 년 전부터 원화 강세가 계속되면서 외국인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상인은 “설 대목 경기가 없어진 것은 오래고 매출도 몇 년 전부터 제자리걸음”이라고 거들었다.

액세서리 전문점을 하는 문선영(여·55) 씨는 “한 달에 열흘은 물건을 하나도 못 팔 정도”라며 “옆 가게는 다섯 달 동안 상가 임차료를 못 내다 결국 나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대문시장에 입점한 한 은행 직원은 “상인들이 주로 거래하는 보통 예금통장의 입금액이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자양골목시장, 우림골목시장 등 일부 재래시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공용쿠폰(상품권) 제도를 도입하고 공동으로 불황 타개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게 한결 같은 목소리다.

서울시 우욱진 재래시장팀장은 “그나마 규모가 크고 도매를 함께하는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은 동네 재래시장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우 팀장은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이 홈쇼핑이나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로 옮아가 재래시장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새봄(24·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4학년) 진병일(24·서강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