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고소득 자영업자 현금영수증 의무화 추진

  • 입력 2008년 1월 31일 02시 58분


지난해 소득탈루율 무려 46%

‘현금결제때 할인’ 관행에 제동

《회사원 박모(43) 씨는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치과에서 치아 교정을 받았다. 병원 측은 진료비를 전액 현금으로 결제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진료비 500만 원의 5%(25만 원)를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박 씨는 “신용카드 결제보다 유리한 것 같아 현금으로 냈지만 기분이 영 찜찜했다”고 말했다. 병원, 변호사, 고급 가구 전문점, 골프용품 전문점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현금 뒷거래’에 대해 국세청이 칼을 빼들었다.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고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을 대폭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현금영수증은 탈세 잡는 특효약”

국세청이 지난해 6월 고소득 자영업자 259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한 결과 소득 탈루율(실제 소득과 신고 소득의 차액을 실제 소득으로 나눈 것)이 46.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소득이 1억 원이면 5380만 원만 세무서에 신고한 것.

문제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현금으로 거래하면 세무조사 외에 실제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변호사 등 전문직 사업자와 병의원 등 의료기관 등은 현금영수증 가맹점으로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발급 의무는 없다.

이 때문에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더라도 “소비자가 요구하지 않아 발급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면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없다. 국세청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고 처벌규정을 만들려는 이유다.

지난해 7월 도입된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제도도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병원에서 성형수술비 200만 원을 현금 결제하는 조건으로 10만 원을 깎아 준다고 제안할 경우 5만 원의 신고 포상금으로는 소비자의 신고 유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신고포상금을 구매금액의 일정 비율에 따라 최고 100만 원까지 높여 고소득 자영업자의 현금 뒷거래를 차단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소득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신고포상금 제도를 통해 사후 관리를 하겠다는 것.

국세청은 재정경제부에 이 같은 문제점을 건의하고 현금영수증 발급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신고포상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 동네 슈퍼도 ‘현금영수증 불똥’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이나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 대상자가 아닌 동네 슈퍼, 재래시장도 남의 일이 아니다.

현금영수증 발급액은 시행 첫해인 2005년 18조6000억 원, 2006년 30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50조 원으로 증가했다. 발급 건수도 2005년 4억5000만 건에서 지난해 15억 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올해 7월부터 현금영수증 발행 기준금액(5000원 이상)이 폐지되면 현금영수증 발급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담배 음료수 등 5000원 미만의 소액 상품을 사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발급 받아 연말정산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편의점의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2000원이다. 담배 음료수 등 5000원 미만 상품의 구매 비중은 전체 매출의 40.1%, 전체 결제건수의 81.1%를 차지하고 있다. 10명 중 8명은 5000원 미만의 상품을 구매하는 셈이다.

GS25 관계자는 “소비자가 담배나 음료수 등 소액 상품을 살 때 현금영수증 발급을 해 주는 가게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소득공제 폭 20%로 늘어

올해부터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소득공제 폭도 늘어난다.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액을 합한 금액이 총급여의 20%를 넘으면, 이 초과분에 대해 20%의 소득공제를 해 준다.

이에 따라 소득세율이 높거나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이 많은 근로자의 연말정산 소득공제 혜택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루 평균 담배 1갑(2500원)을 피우는 연봉 5000만 원의 흡연자가 연간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발급 금액이 2000만 원을 넘고 소득세율 17%가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지출한 담뱃값의 현금영수증 금액으로만 3만600원의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액이라도 현금영수증을 꼬박꼬박 발급받아야 소득공제 혜택이 커진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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