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비교되면서 왕왕 ‘잃어버린 10년’이 회자된다. 지난날 충분히 이룰 수 있었을 경제성장을 놓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4월 총선을 앞두고서 여권 인사들조차 현 정부와 거리를 두려는 보기 민망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 정부로서는 치욕적이다. 정권 교체를 불과 한 달도 안 남겨 놓은 시점에서 이런 치욕을 단 한 방으로 날려 버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한미 FTA의 비준이다. 사실 현 정부가 미국과 FTA 협상을 개시한다고 했을 때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 정부 출범부터 미국과는 정치 군사적으로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FTA 협상은 타결됐고 많은 국민은 한미 FTA 체결을 현 정부의 치적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준 동의를 얻기 위해 먼저 소관 상임위원회인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심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이 손을 놓고 있다고 전해진다. 4월 총선을 앞두고서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미 FTA의 비준을 애써 동의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현재의 원내 1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한미 FTA의 비준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도 한미 FTA의 비준동의안이 통과되도록 국회의원들에게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는 간단히 말하면 한국과 미국의 두 국내 시장이 양국 사이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듯 미국에서도 그렇게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미 FTA의 부정적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양면을 가지고 있어서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고 가능한 한 부정적인 면을 슬기롭게 해소하면 되는 것이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다.
실제 한미 FTA가 체결되는 과정에서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피해를 볼 수 있는 국내 산업의 구제장치를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한미 FTA는 17대 국회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며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해야’ 한다. 비록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선출되지만 선출된 국회의원은 단순히 지역구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한미 FTA는 국가 이익에 관련되는 것이고 국회의원은 한미 FTA에 대한 비준 동의를 양심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지역구의 표심만을 좇으면서 국가 이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17대 국회는 한미 FTA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박노형 고려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