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많고 해외근무 되레 적어
외국계 가전회사에 근무하던 박모(36) 씨는 지난해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박 씨는 대학 졸업 후 호주에서 1년 연수한 뒤 인지도가 높은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팀에 입사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는 좀 더 ‘큰 물’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면서 사표를 냈다. 박 씨는 “외국계 기업이 인지도에 비해 연봉이 낮고, 해외 경험의 기회도 적었다”며 “차라리 국내 대기업이 여러 면에서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 50% “이직 고려”… 국내 기업보다 높아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다가 순수 국내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은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업체 중 하나이지만 장점 못지않게 과도한 업무 부담 등 불리한 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가 올해 초 국내 직장인 3455명을 대상으로 ‘2008년 이직 계획’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외국계 기업 종사자의 50.0%가 ‘이직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나머지 조사 대상인 중소기업(45.4%)과 대기업(43.1%)보다 높은 수치다. 이직 이유는 ‘담당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44.8%)가 가장 많았다.
○ 능력 떨어지면 바로 도태
동아일보 산업부가 지난해 66개 주요 기업의 신입사원 현황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외국계 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학력, 영어 성적, 대외 활동 경력 등이 대기업 공기업 등의 신입사원보다 좋았다.
▶본보 1월 30일자 A2면 참조
좁은 취업門, 내 자리는 어디쯤…
하지만 잡코리아 조사에서 보듯 외국계 기업 사원 중 적지 않은 수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본보 취재팀은 한국IBM, 구글코리아, 한국P&G, 로레알코리아, 한국화이자, 삼성테스코, GM대우자동차 등 입사 선호도가 높은 외국계 기업 7곳의 신입사원을 심층 인터뷰해 회사만족도를 알아봤다.
한 미국계 회사에 입사한 A(28) 씨는 “외국계 기업은 개인에게 많은 책임과 권한을 지우는데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소비재 분야 외국계 기업의 2년차 사원인 B(28) 씨는 “외국계 기업에는 외국인이 많이 일할 줄 알았는데 99%가 한국인”이라며 “오히려 해외 근무 기회는 외국계 기업보다 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에 더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외국에서 고교 및 대학을 졸업한 C(29) 씨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소규모 지사(支社)여서 본사의 전략대로 따르는 수동적 역할에 그친다”고 털어놨다.
헤드헌팅 회사인 맨파워 코리아의 서현철 전무는 “한국 기업은 기본적으로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르치지만, 외국 기업은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바로 도태된다”며 “외국 기업의 호감도가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는 장점
그러나 능력을 발휘할 자신감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외국계 회사만큼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곳도 없다는 반론도 많다.
삼성테스코 입사 3년차인 지준용(29) 주임은 “외국계 기업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연차에 크게 개의치 않고 비중 있는 업무를 맡긴다”며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면 회사에 대한 로열티(충성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GM대우차의 염지연(25·여) 씨는 “출퇴근이 자유롭고, 쓸 수 있는 휴가는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해서 좋다”며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에 힘입어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사원도 많다”고 귀띔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