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투자회사인 블랙록은 11일 금융감독위원회에 자산운용사 설립을 위한 예비허가 신청서를 냈다. 국내에 운용사를 설립한 뒤 한국의 고객이 비과세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는 ‘역내 펀드’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한국의 펀드 순자산 규모는 세계 15위 수준. 2002년 2분기(4∼6월) 3005억 달러(285조4750억 원)에서 지난해 3분기(7∼9월) 3304억 달러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급팽창하는 한국의 펀드시장을 겨냥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국내 진출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한국의 금융회사들도 내년 2월 시행될 자본시장통합법을 앞두고 자산운용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 자산운용사 설립허가 신청 봇물
올해 들어 금감위에 자산운용사 설립허가 신청서를 낸 곳만 6곳. 블랙록 외에 미국계 투자회사인 얼라이언스번스타인과 라자드에셋이 11일 자산운용사 설립허가 신청을 했다.
국내 금융회사 중에서는 에셋플러스투자자문 메리츠화재 대한토지신탁 등 3개사가 지난달 신청서를 냈다. 이 밖에 현대증권과 인덱스펀드로 유명한 뱅가드가 올해 안에 자산운용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대기업 가운데 롯데그룹이 자산운용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이미 52개의 자산운용사가 있지만 앞으로 국내 펀드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어서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는 국내외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자산운용업계는 특히 2005년 12월 도입된 퇴직연금제도가 본격화되면 펀드로 유입되는 자산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자통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각종 금융규제가 완화돼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자산운용업이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산운용협회 김정아 실장은 “자산운용업은 설립 자본금이 100억 원으로 다른 금융업보다 진입장벽이 낮다”며 “선진국에서 퇴직연금이 도입됨에 따라 자산운용업이 급성장했던 것처럼 한국의 퇴직연금 수요를 예상한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의 진출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전문가들 “특화 분야로 경쟁력 갖춰야”
자산운용사가 늘어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은 특화된 상품이나 전문성을 통해 틈새시장을 발굴하고 있다.
지난달 자산운용사 진출 신청서를 낸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펀드’를 전문으로 운용하는 운용사를 세울 예정이다. 행정공제회가 대주주로 있는 마이어자산운용도 해외 부동산 펀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외에 인덱스 펀드나 중소형 펀드를 위주로 하는 유리자산운용, 가치주 펀드에서 강세를 보이는 한국밸류자산운용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 신영투자신탁운용 등도 해당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증권연구원 박신애 연구원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특정 상품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객을 확보하려는 자산운용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경쟁 강화로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시장의 효율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일정한 요건을 갖춘 곳이라면 자산운용 진출을 적극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올해 자산운용사 신설 허가 신청 현황 | |||
신청인 | 상호(가칭) | 자본금 | 신청일자 |
대한토지신탁 | DH부동산자산운용 | 100억 원 | 1월 9일 |
메리츠화재 | 메리츠자산운용 | 100억 원 | 1월 14일 |
에셋플러스투자자문 | 에셋플러스자산운용 | 110억 원 | 1월 17일 |
블랙록 | 블랙록자산운용 | 100억 원 | 2월 11일 |
얼라이언스번스타인 | 얼라이언스번스타인자산운용 | 100억 원 | |
라자드에셋 |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 | 100억 원 | |
자료: 금융감독위원회 |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