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제5선거구의 게리 애크먼 의원은 최근 지역구 한인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읽느라 여념이 없다. 이미 한국 외교관들, 경제단체들로부터 한미 FTA를 지지해 달라는 요청은 많이 받아 왔지만 유권자의 편지는 의미가 다르다.
재미 교포들이 한미 FTA를 살리기 위한 풀뿌리 운동에 나섰다.
지난해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을 위해 결집했던 데 이어 제2의 풀뿌리 운동에 나선 것. 한인들은 지난해 상반기 위안부 결의안이 일본의 로비로 어려움을 겪자 의원들에게 수십만 통의 편지를 보내고 미 전역에 걸쳐 의원 사무실 방문, 후원금 모금회 개최 등 풀뿌리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한인들은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한미 FTA에 부정적인 데다 미국 대선 등 정치 일정까지 겹쳐 의회 통과에 먹구름이 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말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한인 1.5세인 김도경 변호사가 웹사이트 코디네이터 역을 맡아 웹상에서 한국계 미국시민들을 조직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를 중심으로 한인단체들은 올 초 '한미 FTA 지지를 위한 한국계 미국인 연합'을 출범시켰다. 이미 뉴욕 워싱턴 메릴랜드 시카고 시애틀 등 곳곳에서 65개 교민 단체가 동참해 지역정치인들에게 유권자의 뜻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교민들은 의원에게 편지쓰기, 의원 초청 간담회 등을 통해 각자 지역구 의원을 '찬성'쪽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한 유권자 단체 대표는 "미국 연방의원은 워싱턴에선 대단한 자리지만 지역구 유권자 차원에서 접근하면 한없이 가까운 존재"라며 "미 의회에서 FTA 표결은 한표 한표씩 찬성표를 정성껏 모아야 하는 과정이므로 유권자 차원의 접근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민들은 생각 밖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한 재미 활동가는 "위안부 결의안 지지나 FTA 지지 같은 이슈를 우리는 진보나 보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유권자의 이해관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한국의 일부 진보단체에서는 '어떻게 시민운동을 하면서 FTA에 찬성할 수 있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단체는 나아가 미 수사당국으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외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에 민감한 미 당국이 '비영리단체'로 등록한 유권자 단체가 한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허가받지 않은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게 아닌지 의심할까봐 행동에 더욱 조심을 해야했다.
물론 유권자 단체들의 회계 처리가 투명하고 '한미 FTA가 미국 시민인 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어서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점이 설명돼 별다른 문제는 빚어지지 않았지만 풀뿌리 운동으로 한미 FTA를 성공시키기 위해 올라야할 산이 높음을 실감케 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