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의 어느 날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남성용 무가지(無價紙) 스탠드에서 최근호를 집어 드는 사람은 의외로 20대 여성이다.
이 잡지는 분명히 ‘25∼34세 남성 직장인이 타깃’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 내용도 젊은 남성들이 궁금해 하는 직장생활의 팁과 연애, 패션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독자 중 상당수가 여성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사실을 사업 확장에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고객 인사이트가 新사업 열쇠
예전에는 품질과 기술이 기업 경영의 화두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객 인사이트(customer insight)’가 국내 기업들의 집중적 조명을 받고 있다.
박재항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에 따르면 소비자 인사이트란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소비자의 숨겨진 욕구와 행동의 자극 포인트”를 말한다. 고객 인사이트를 찾으면 새로운 사업과 성장동력의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5월 본사에 인사이트마케팅(IM)팀을 만든 데 이어 최근 해외법인에 지역 본부 단위의 IM팀을 구축했다. 또 마케팅 전문가가 아닌 일반 직원도 쉽게 인사이트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한 업무 프로세스 ‘인사이트 게이트(Insight Gate)’를 개발해 올해 4월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SK텔레콤과 KT도 소비자 인사이트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최명화 LG전자 IM팀 상무는 “소비자 인사이트는 기술과 품질이 평준화된 시장에서 궁극적 차별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인사이트는 또 설문이나 통계 등 기존 마케팅 조사가 찾아내지 못하는 소비자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위 남성용 무가지의 경우 젊은 남성을 타깃 독자로 했으므로 대부분의 시장조사는 해당 연령대의 남성을 대상으로 했을 것이다. 이 경우 여성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의도하지 않은 고객’인 여성의 존재를 알아낼 길이 없다. 따라서 여성 대상의 광고나 이벤트, 기사 등의 사업 기회를 놓쳐 버릴 수 있다.
○함께 생활하며 조사하는 문화인류학적 접근
소비자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연구 방법은 문화인류학적 관찰조사법(ethnographic research)이다. 관찰조사법은 원시부족 등 특정 집단과 함께 생활하며 인간의 본질과 문화 패턴을 연구하는 데 많이 쓰여 왔다.
마케팅에서의 관찰조사법은 특히 소비자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런 것의 존재를 모를 때 잠재된 욕구를 뽑아내는 데 유용하다. 생활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포인트. 소비자의 가정을 방문해 사용 환경을 관찰하거나(home visit), 대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행동을 기록하거나(shadowing), 쇼핑하는 과정을 관찰하기도(shop-along) 한다.
최근에는 소비자에게 사진 및 동영상으로 일기를 쓰게 하거나, 부부가 서로를 관찰하게 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관찰조사법 등 새로운 마케팅 조사기법은 점점 더 범위와 깊이가 확대되고 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은 ‘인간 쾌감의 새로운 요소’를 찾기 위해 스카이다이버들과 1년 동안 같이 생활한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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