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조선 건설업계도 몸살… 수출 전선에 먹구름
국제 유가가 종가(終價)기준으로는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곡물 등 주요 원자재의 가격 급등세가 이어져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국내 물가가 덩달아 오르고 원유 등 수입 원자재를 쓰는 기업에도 원가 부담이 커진다. 같은 물건을 수입하면서 더 많은 달러를 지불해야 해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금리를 낮추면 경기 둔화는 늦출 수 있지만 이는 물가를 더 자극하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미국이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한다면 미국의 경기 회복이 더뎌진다. 이 경우 한국으로서는 수출이 줄어들게 된다.
○ 원유 금 철광석 곡물 모두 올라
최근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先物) 가격 기준으로 90달러대에서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19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3월 인도분 WTI는 전 거래일보다 무려 4.51달러나 폭등한 배럴당 100.0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월 2일 장중에 100달러를 돌파한 적이 있지만 종가 기준으로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이미 지난주 90달러 선을 돌파한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가격 역시 1.05달러 오른 91.61달러에 장을 마쳤다. 지난달 4일의 사상 최고치(92.29달러)에 바짝 다가선 것.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침체의 길을 걷고 있어 원유 수요가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유가가 오르는 것은 투기자금 유입이 가장 큰 요인이다. 19일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다음 달 생산을 줄일 것이라고 결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다른 원자재 가격의 급등세도 심각하다. 19일 NYMEX에서 거래된 4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3.70달러(3%)나 오른 온스당 929.80달러에 거래됐다. 또 대한광업진흥공사에 따르면 호주 뉴캐슬산 석탄은 지난해 초에 비해 145% 오른 t당 125달러에 공급되고 있다. 기상 이변에 바이오연료라는 대규모 수요처가 등장한 곡물의 가격 움직임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선물가격은 대두가 95.8%, 밀은 79.9%, 옥수수는 25%나 올랐다.
○ 수입 가격에 짓눌린 한국 경제
국제 상품 가격은 국내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서민 생활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새 정부의 물가 관리와 경기 운용에도 부담을 준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원유와 원자재 등 수입 대금 부담이 더 커졌다.
수입 물가는 지난달 21.2%(전년 동기 대비)나 올랐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9%로, 3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인 데 이어 1월 수입 물가는 1998년 10월 이후 9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무역수지도 원유 도입 단가가 배럴당 80달러대에 이른 지난해 12월 57개월 만에 처음 8억6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1월에는 적자가 33억8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현재 추세로는 2월에도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보일 소지가 크다.
○ 원가 부담 높아진 산업계도 비상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국내 산업계 전반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철광석과 유연탄 가격이 치솟으면서 철강제품 가격이 오르고 이를 사용하는 자동차, 조선, 건설업계 등이 몸살을 앓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철광석 도입 단가를 지난해보다 65% 오른 가격에 계약했다. 유연탄 가격은 아직 협상 중이지만 인상폭은 철광석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1일 자동차, 냉장고 등에 쓰이는 냉연강판 가격을 t당 60만 원에서 66만5000원으로 11% 인상했지만 추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는 최소한 1400억 원 정도의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추가 비용이 소비자가격에 모두 전가되면 차량별로 대당 6만∼8만 원이 비싸지게 된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