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수인 A(73·서울 서초구 서초동) 씨는 며칠 전 부인과 함께 동네 은행 지점을 찾았다. 최근 만난 친구에게서 “집을 은행에 맡기고 매월 일정 금액을 받는 ‘역(易)모기지’가 노후 생활비 마련에 괜찮다더라”는 말을 듣고 역모기지에 가입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A 씨는 은행 직원에게서 “주택금융공사의 역모기지 가입 대상 주택은 ‘시가 6억 원 이하’인데 현재 보유한 집은 10억 원 정도여서 가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정부가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지난해 7월 내놓은 ‘역모기지’가 기대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내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한 데다 역모기지를 이용하는 데 많은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 이달 들어 12건 가입
현재 역모기지는 주택금융공사의 상품과 신한은행의 상품 등 2가지가 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도입된 ‘주택연금’의 월별 가입건수는 지난해 8월 141건에서 △9월 97건 △10월 114건 △11월 80건 △12월 51건 △올해 1월 55건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가입은 12건.
또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자체 역모기지 상품을 팔고 있는 신한은행의 역모기지 신규 가입 건수도 △2004년 219건 △2005년 222건 △2006년 126건 △2007년 129건 등으로 감소 추세다.
역모기지 상품을 판매하는 시중은행들은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집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을 꼽았다. 이와 함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역모기지 확산을 막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건국대 고성수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여전히 절대다수의 국민은 주택 가격이 꾸준히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역모기지에 가입하는 대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쓰다가 집값이 오른 뒤 팔아서 갚는 게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 소비자 선택권 확대해야
일부에서는 역모기지의 가입조건 등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의 상품은 기업 국민 하나 신한 우리은행과 농협 삼성화재 흥국생명 등 8개 금융회사에서 팔고 있지만 심사는 주택금융공사에 직접 가서 받아야 한다. 부부 모두 만 65세 이상이고, 시가 6억 원 이하 주택 1채를 보유한 경우에만 가입할 수 있다. 따라서 6억 원 초과 주택이나 2억∼3억 원짜리 주택을 2채 보유한 사람은 가입할 수 없다. 또 전세를 준 주택이나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근저당권이 설정된 주택도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한은행 상품은 나이 제한과 주택 가격 제한은 없지만 대출 기간이 최대 15년으로 정해져 있고 대출금리도 주택금융공사 상품보다 1.0%포인트 높다.
K은행 관계자는 “주택금융공사의 역모기지는 신한은행 상품보다 조건이 좋지만 가입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라고 말했다.
주택금융공사 측은 “지난해 말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전세를 준 주택의 보유자도 역모기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부 조직개편을 앞두고 부처 간 조율이 쉽지 않아 논의가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대구대 마승렬 보험금융학과 겸임교수는 “역모기지를 활성화하려면 주택금융공사도 더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해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